[한경데스크] '폭풍전야' 통상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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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
![[한경데스크] '폭풍전야' 통상임금](https://img.hankyung.com/photo/201312/02.6926992.1.jpg)
혼란은 법제도의 미비에서 비롯됐다. 초과근로 수당의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대한 법률 규정은 따로 없다. 단지 1982년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에서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해진 금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달리 1988년 처음 마련되고 2012년 9월 개정된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통상임금 산정 지침)은 ‘1임금 산정기간(1개월)’ 내에 계속 지급된 경우에만 정기성을 인정해왔다. 노사 쌍방이 1개월 이상, 이를 테면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뺀 근거가 여기에 있다. 상여금을 ‘노동의 대가’라고 간주하지 않고 생활보조적 성격으로 해석한 지침이다.
법제도 미비가 빚은 혼란
상황이 복잡해진 건 행정지침과 충돌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부터다. 1996년 2월 대법원에서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것이라도 그것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결한 이후 사법부는 통상임금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임금체계는 갈수록 복잡해졌다. 노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사용자 측은 고정비 부담을 덜기 위해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도 되는 각종 수당을 신설했고, 노동자들은 이를 활용해 세제상 혜택을 보는 동시에 소득 확대를 꾀했다.
민사법 영역이라면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애초 문제될 게 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발표한 ‘통상임금의 국제 비교 및 시사점 연구’를 통해 “대등한 지위에서 노사가 기업의 개별적 구체적 임금실태를 감안하여 자율적으로 통상임금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면 그것이 명백히 위법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법이라고 해서 굳이 민사법의 대원칙인 ‘신의칙(신의 성실의 원리)’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노사합의보다는 법 규정이 우선이라는 관점에 동의하는 노동법학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노동자 보호를 최우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대기업 정규직에 혜택 집중
다시 반박이 뒤따른다. 고임금의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학문적 기류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지난 3년간 소급분과 한 해 추가로 발생할 비용을 합치면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은 1인당 평균 749만원을 가져가는 반면 비정규직은 38만원의 혜택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통상임금 다툼을 ‘그들만의 리그’로 바라보는 이유다.
수십년 동안 켜켜이 쌓여온 논란의 소지를 절묘하게 해소할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 전체에 주름이 가지 않으면서 근로가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임금 체계를 도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냉철하고도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