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 기자의 교육라운지] 기준 따라 달라지는 수능 전국수석… 입시업체 PR대결?
교육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조기교육, 영재교육부터 초·중·고교, 대학, 그리고 100세 시대를 맞아 평생교육까지. 이미 교육은 '보편적 복지'의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계층과 지역간 교육 인프라와 정보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한경닷컴은 이런 교육 문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김봉구 기자의 교육라운지'를 연재합니다. 입시를 비롯한 교육 전반의 이슈를 다룹니다. 교육 관련 칼럼과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Q&A 등이 매주 화요일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올해 수능은 교육 현장의 관심이 매우 높았습니다. 사상 처음 수준별 선택형 수능(A·B형)으로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바뀐 수능으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수험생도 많았죠.

이런 가운데 자연히 수능 전국수석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렸습니다. 올해 수능 만점자는 총 33명으로 집계됐는데요. 특히 자연계에선 목포 홍일고 출신 전봉열 군이 유일하게 전 영역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습니다. 당연히 자연계 전국수석도 전 군의 차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학원가에선 '실질적 수석'이 따로 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원점수 기준으로 하면 자연히 유일한 만점자 전 군이 수석이죠. 하지만 표준점수로 환산했을 때는 점수가 더 높은 서울과학고 졸업생 정혜경 양이 수석이란 겁니다.

정 양은 수능에서 과학탐구 화학II 3점짜리 문항 한 문제를 틀려 만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수험생이 과목을 고를 수 있는 탐구영역에서 난이도가 높은 과목에 응시, 오히려 표준점수는 만점자인 전 군보다 더 높게 나온 것입니다.

원점수와 표준점수의 차이는 표준점수가 과목 난이도를 반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표준점수는 해당 과목 응시자 평균과 표준편차를 활용해 산정합니다. 어렵게 출제된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의 표준점수가 더 높게 나오는 게 특징입니다. A·B형 선택 여부와 탐구영역 어느 과목에 응시했는지에 따라 같은 성적이라도 표준점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선택 과목의 난이도 차가 크다면 원점수가 낮더라도 표준점수에선 역전되기도 합니다. 바로 전 군과 정 양의 사례가 이 경우에 속합니다.

전 군과 정 양은 똑같이 국어A형 수학B형 영어B형에 응시해 만점을 받았습니다. 점수가 갈린 것은 탐구영역이었습니다. 전 군이 난이도가 낮은 편인 물리I과 생명과학II에, 정 양은 어렵게 출제된 생명과학I과 화학II에 응시했는데요. 이에 따라 표준점수 기준으로 전 군은 542점, 정 양은 546점으로 원점수에서 3점 뒤진 정 양이 표준점수에선 4점 앞선 겁니다.

사실 누가 자연계 수석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팩트(fact)대로 얘기하면 원점수로는 전 군이, 표준점수로는 정 양이 수석이지만 대입에서 어느 점수를 전형기준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수석이 누군지를 따지는 속내는 입시업체 간 'PR 대결'로 보이기도 합니다. 각자 다른 잣대를 내세워 특정 학원에서 공부한 수험생이 수석을 차지했다고 알리는 모양새니까요.

전 군은 서초메가스터디학원에서, 정 양은 강남청솔기숙학원에서 공부한 재수생입니다. 입시업체 메가스터디가 자연계 유일한 만점자를 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자, 이투스청솔도 표준점수 기준 수석을 배출했다고 알린 셈입니다.

이투스청솔 측은 "원점수만 반영하는 대학은 없으며 상위권 대학들은 표준점수를 활용해 학생을 선발한다"며 정 양을 띄웠습니다. 반면 메가스터디 관계자는 "원점수 등급, 백분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므로 표준점수로만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대학 입학 관계자는 "두 수험생 가운데 누가 낫다, 수석이라고 하기엔 애매모호하다"며 "케이스별로 원점수와 표준점수, 등급, 백분위 등을 달리 적용하기도 하고 해당 요소들을 반영한 변환 표준점수로도 수험생을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표준점수 기준 전국수석은 1문제씩 틀려 547점을 기록한 상산고 3학년 김연경 양과 충남고 3학년 김찬호 군인 것으로 알려왔습니다. 철저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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