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FTA 몸값' 적극 활용해야
지난 3일 타결된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한국의 FTA 통상정책에 몇 가지 교훈을 준다. 먼저,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을 상대국이 바꿀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있다는 점이다.

한·호주 FTA 협상은 2009년 5월부터 1년간 5차례 진행됐으나, 당시 호주 집권당인 노동당이 투자자정부제소권(ISD) 도입을 반대함에 따라 협상이 중단됐다. ISD는 대부분의 FTA와 투자협정에 포함돼 있는 투자자보호조항인데, 유독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국내 FTA 반대론자들은 ISD를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목했다. 2010년 당시 국내에서는 한·미 FTA 재협상 논란이 일었고, 호주와의 FTA에서 ISD 제외는 한·미 FTA 논란을 증폭시킬 수 있어 한국 정부는 호주와의 FTA 협상을 지속할 수 없었다. 결국 ISD 문제는 지난 9월 호주에서 보수성향인 자유당이 집권하면서 풀렸다.

두 번째 교훈은 한국의 ‘FTA 몸값’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및 유럽연합(EU)과의 FTA를 포함해 46개국과 9개의 FTA를 발효시킨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FTA망을 구축했다. 그동안 FTA 체결 과정에서 사회경제적으로 큰 비용을 지급했으나, 한국이 확보한 FTA망은 많은 국가가 한국과의 FTA 체결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게 됐다.

주요 수출품목의 해외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FTA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호주의 통상정책을 세 번째 교훈으로 볼 수 있다. 2012년 기준, 호주는 한국에 198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98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입하고 있지만, 수출품의 대부분은 철광석, 원유 등 1차산물이다. 쇠고기를 포함한 축산물의 한국 수출 비중은 3.4%에 지나지 않는다. 2004년 2월 타결된 미국·호주 FTA에서 상당한 대가를 지급하고도 ISD를 제외했던 호주가 한국과의 FTA에서 ISD를 포함해 협상 타결에 나서게 된 것은 한국 시장에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가격경쟁력 강화 목적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2005년을 전후해 호주는 한국인 입맛에 맞는 소고기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전통적으로 호주는 풀을 줘 소를 키우지만, 일정 기간 곡물사료를 먹인 마블링 소고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파동 때 호주산 소고기가 한국 수입 소고기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할 수 있었던 것은 호주 소고기의 청정 이미지에다 마블링 소고기가 우리 입맛에도 맞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부유층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호주 소고기산업은 새로운 수출시장을 확보하게 됐다. 지난해 호주 소고기의 중국 수출은 3.5배나 늘었고, 수출가격도 많이 올릴 수 있었다. 최근 국내에서 호주산 소고기 가격이 오르는 것도 중국으로의 수출 증가 때문이다.

호주산 소고기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호주산 소고기가 한국 수입 소고기 점유율 1위를 지키는 데에는 한·미 FTA가 미국산 소고기에 적용하는 특혜관세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협상단은 한·미 FTA에서보다 소고기 시장을 보수적으로 호주 측에 개방했다고 하지만, 호주 정부는 소고기에 대한 40% 관세가 2030년 철폐되는 것에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이번 협상은 자동차는 받고 소고기를 내주는 FT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와의 FTA 협상 타결로 그동안 부진하던 캐나다, 뉴질랜드와의 FTA 협상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들 FTA에서도 소고기가 핵심쟁점이다. 문제는 국내 이해관계자 집단의 반발을 어떻게 완화하고, 한우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는가가 될 것이다. 쌀 관세화와 소고기 시장 추가개방이 겹친 내년도 농업통상정책은 험난한 과정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인교 < 인하대 교수·경제학 inkyo@in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