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목동 등 행복주택 예정 시범지구 5곳의 공급 가구 수를 당초 계획에서 절반 이하로 대폭 축소한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인 행복주택 사업이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주민 반대에 밀려 후퇴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등 젊은 세대와 주거취약 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을 반대하는 것은 전형적인 ‘님비’(NIMBY·지역 이기주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행복주택의 굴욕…주민 반발에 반토막

○행복주택 시범지구 물량 ‘반토막’

국토부는 행복주택 예정 시범지구 가운데 아직 지구 지정이 이뤄지지 않은 서울 목동·잠실·송파·공릉과 경기 안산(고잔) 등 5곳에서 공급 가구 수를 50~62% 축소하기로 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당초 이들 5곳에서 총 7900가구의 행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3450가구로 대폭 줄게 됐다. 기존 계획의 44% 수준이다.

목동지구는 당초 2800가구에서 1300가구로 절반 이상 줄인다. 목동지구의 행복주택은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단지 인근의 유수지(홍수 방지용 빗물 저장 부지)에 건설하는 것으로, 현지 주민들은 인구와 학교 과밀화, 교통혼잡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대해 왔다.

국토부는 이번 공급 가구 물량 축소로 과밀 문제를 해소하고 주민들이 사용하던 공영주차장과 테니스장 등도 지구 내에 대체시설을 마련해 ‘개발에 따른 지역편의성’을 대폭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안산 고잔지구는 기존 1500가구에서 700가구로 축소하고, 건물의 층고도 조정해 주변 경관과 조화되도록 꾸밀 방침이다. 이 밖에 잠실은 1800가구에서 750가구로, 송파는 1600가구에서 600가구로, 공릉은 200가구에서 100가구로 각각 축소한다. 국토부는 이번 방침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사업 추진을 원활히 하기 위해 12일부터 16일까지 5개 지구별로 주민설명회도 연다.

○주민 반발 지속…‘님비’ 비판 여론도

정부의 ‘행복주택 계획 후퇴’ 입장 발표에 주민 반발이 사그라질지는 의문이다. 신정호 목동 행복주택 건립반대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는 공급물량 축소를 제시하거나 이를 희망한 적이 없다”며 “공급물량을 불문하고, 행복주택 위치선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주민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국토부가 목동 행복주택 공급 물량을 2800가구에서 1300가구로 줄였다고 얘기하는 것도 실제로 쓸 수 있는 용지를 계산하다 보니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 입장을 반영하고 존중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들의 개발반대 움직임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우리집 앞마당은 안 된다”는 전형적인 지역 이기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거복지연대, 임대주택국민연합 등 50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주거안정국민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복주택 시범지구 주민과 지자체가 반대하면서 제기하는 문제는 서울 어디서든 제기될 수 있는 문제로, 이를 계속 주장하며 반대하는 것은 전형적 님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님비 현상은 시민들의 공생환경을 악화시키고, 도시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며 “도시에서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사는 주거환경이 갖춰지도록 국회의원·자치단체장 등이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정락/이현진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