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의 충격…삼성, 애플과 2차 특허소송 '敗'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서 벌인 두 번째 특허소송에서 패소했다. ‘프랜드(FRAND) 원칙’으로 인해 사실상 힘을 쓸 수 없게 된 표준특허 대신 상용특허로 애플을 공격했지만 모두 기각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프랜드 원칙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표준특허 사용을 허락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미국에서 내년 3월 시작될 예정인 2차 특허 소송은 두 회사의 상용특허만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삼성전자는 더 긴장하고 있다.

◆‘상용특허’ 내세운 작전 실패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심우용)는 12일 삼성전자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낸 특허침해금지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문자메시지(SMS)를 작성하다가 전화번호를 검색할 때 메시지가 유실되지 않도록 한 삼성의 기술(특허번호 808)에 대해서 재판부는 “스마트폰 등장 이전 개인정보단말기(PDA)에서 사용됐던 기술과 밀접히 관련돼 있으므로 그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판시했다. 진보성은 특허 발명자가 고유의 독보적인 기술을 창안했는지에 관한 것으로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808 특허가 사실상 특허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해석한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문자메시지 등이 도착했을 때 터치를 통해 바로 관련 기능을 실행하는 646 특허에 대해서도 특허의 효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과거 애플이 만들었던 PDA인 ‘뉴턴’에서 대부분 구현됐던 기술이라는 점에서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설명했다. 여러 개의 단문 메시지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기술(700)에 관해서는 “애플이 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삼성전자의 주무기였던 표준특허가 ‘프랜드 원칙’에 발목이 잡혀 큰 활약을 하지 못하자 삼성전자는 국면 전환을 위해 상용특허를 앞세웠다. 하지만 세 특허 모두 기각되면서 삼성전자의 상용특허 역시 큰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내년 3월 미국 법정에서 시작되는 2차 본안 소송은 두 회사의 상용특허만을 가지고 맞붙는 대결이라 삼성전자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승자는 누구?

세기의 특허 소송에서 수세에 몰린 기업은 삼성전자다. 미국 법원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에 6억4000만달러(약 680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배심원들로부터 “2억9000만달러(약 3100억원)를 손해배상액으로 지급하라”는 평결을 받았다. 평결이 확정되면 삼성전자는 손해배상금으로 애플에 1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줘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소송전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전자라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2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시장의 후발 주자였지만 세계 법원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애플과 ‘시장의 주도권을 다투는 업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송전 이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수직상승해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애플에 천문학적 배상금을 내야 할지 몰라도 이번 소송에서 그에 상응하는 홍보 효과를 누린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국내 법원에선 애플에 졌지만 11일(현지시간) 독일 만하임법원에서 열린 애플과의 특허 소송에선 이겼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