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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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선릉역 인근 KAIT타워(옛 토마토빌딩) 20층, 문주현 엠디엠·한국자산신탁 회장 사무실에는 아파트 관련 도면과 모형도 등이 빼곡하다. 그동안 시행 및 마케팅을 벌여온 사업지에 대한 자료다.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밤낮없이 고민하지만 늘 즐겁고 유쾌하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다. 그는 소주 한 잔이 주량일 정도로 술을 잘하지 못하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금세 친해진다.

특유의 친화력과 열정으로 창업 15년 만에 국내 최대 디벨로퍼(개발업체)로 우뚝 섰다. 문 회장은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조심스럽게 한발씩 내딛고 있다”며 “부침이 많은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 모범이 되는 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전남 장흥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다닐 생각도 못했죠. 27세에 대학교에 입학했고 31세에 취직했지만 한번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온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열심히 하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운 적도 적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기대 이상으로 잘 해결됐습니다. ”

▷자체 시행 사업이 대박 행진인데.

“2007년 부산에서 첫 시행(해운대 대우 월드마크센텀)을 할 때 모두가 걱정했습니다. 분양가격도 비쌌고 시장은 버블(거품)을 향해 치닫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싼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양복 명품은 한 벌에 350만원이나 하지만 싼 건 25만원에도 살 수 있습니다. 명품 상품을 만들자고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해 왔습니다. 부대시설과 내부 인테리어를 차별화하고 뛰어난 해운대 조망권도 내세웠더니 청약자들이 줄을 섰습니다.”

▷한국자산신탁 인수로 업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조치로 2010년 한국자산신탁이 매각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대형 은행을 제치고 인수하게 됐습니다. 물론 1년여 전부터 착실히 준비했습니다. 금융업과 공조 체제를 유지해야 부동산 개발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벨로퍼가 소프트웨어라면 금융회사는 외관을 감싸는 하드웨어인 셈이죠. 지금은 시너지 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입주를 많이 시켰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까.

“올해 준공한 단지가 ‘판교 푸르지오월드마크’(142가구), ‘신야탑 푸르지오시티’(168실), ‘송파 푸르지오시티’(1249실) 등입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입주가 잘될지 걱정이었는데 모두 잘 마무리됐습니다. 송파 푸르지오시티의 경우 오피스텔에 사우나와 게스트하우스 등 아파트에 버금가는 부대시설을 넣은 게 주효했습니다.”

▷개발 사업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요.

“디벨로퍼는 원재료인 땅을 잘 사야 합니다. 좋은 땅을 사면 건설사에서 알아서 건축물을 짓겠다고 찾아옵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쉽습니다. 내년에 서울 강남 세곡지구와 위례신도시 마곡지구 등에서 5개 단지, 2000여가구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서울의 노른자위 땅이어서 건설사들이 서로 공사를 맡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럼 어떤 땅이 사업하기 좋은 땅인가요.


“(웃으면서) 너무 자세히 말하면 영업비밀이 다 공개되는 건데…. 미래를 보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예측을 해야 합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마이 카(My Car)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고 경부고속도로 사업에 적극 참여해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10만명이 사는 도시면 거기에 뭐가 필요할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앞으로는 1~2인 가구 시대입니다. 또 다른 흐름은 은퇴한 베이비부머 등이 투자자로 나서면서 부동산 투자수익률에 관심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도심회귀 현상이 강해질 전망입니다. 인구가 줄면 지방이나 변두리부터 사람들이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인구가 늘어나는 곳, 돈을 버는 도시에 땅을 사야 합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은 뭔가요.

“부동산 시장 과열기 때 도입된 정책을 대거 풀어야 합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수요가 넘치던 시절에는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제책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규제책이 아니라 부양책이 필요합니다.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과세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주택자들이 싸게 전세를 놓는 건전한 임대주택사업자로 변신합니다.”

▷부동산 시장은 언제 바닥을 칠까요.


“부동산 시장은 바닥을 다졌다고 봅니다. 수원 광교신도시 아파트가 입주 때 3.3㎡당 1200만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최근에는 1700만원대로 치솟았습니다. 판교 등 수도권 남부 주요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다소 낮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폐지 등 주요 법안들이 매번 국회 문턱에서 번번이 무산되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이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책 발표 못지않게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합니다. 여야 정치권이 민생 안정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향후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보시나요.

“과거에는 무조건 대형 평형을 선호했지만 지금은 중소형이 대세입니다. 1~2인 가구 증가와 베이버부머 은퇴 등 인구 구조적인 문제도 있고 부동산 가격 하락이라는 변수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장은 과도기 상태입니다.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하려면 분양가 상한제 탄력 적용, 양도세 인하 등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적정 수준의 집값 상승이 뒤따라야 합니다. 은행 금리나 물가 상승에 준하는 연 3%를 조금 웃도는 집값 상승이 유지돼야 전·월세 시장과 매매시장이 안정됩니다. 집을 사는 사람은 직장과의 거리, 역세권, 학군 등 생활권을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자산 규모를 따지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지역의 발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김진수/김보형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