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1년, 현장경기는 극심한 온도차…긴자거리 백화점 '불티'…서민식당 "깎아줘도 안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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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여는 일본 부유층
부동산·주가 뛰며 '자산효과', 비쌀수록 잘팔려…명품 인기
중고서적도 안팔려요
이벤트도 시큰둥…폐점 속출 "내년 소비세 인상이 더 걱정"
부동산·주가 뛰며 '자산효과', 비쌀수록 잘팔려…명품 인기
중고서적도 안팔려요
이벤트도 시큰둥…폐점 속출 "내년 소비세 인상이 더 걱정"
일본 도쿄 긴자거리의 미쓰코시백화점 1층 보석매장.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가 점원이 내놓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열심이다. “구두쇠 영감이 웬일이냐고 아내가 너무 놀라지나 않을까 걱정이네요.”
같은 백화점 6층. ‘긴자 스타일 워치 페어’라는 플래카드 아래 사람들이 북적인다. 하나에 100만엔을 훌쩍 넘는 고가 명품시계를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이다. 매장 점원인 스기우치는 “올해는 예년에 비해 백화점에서 여러 브랜드의 명품전이 자주 열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가 등장한 이후 일본 백화점업계는 완전히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일본 5대 백화점체인의 매출은 올 들어 거의 매달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긴자 신주쿠 등에 백화점을 갖고 있는 미쓰코시이세탄그룹의 11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8% 늘었다. 비쌀수록 잘 팔렸다. 보석류 매출은 1년 전에 비해 30% 이상 불어났고, 500만엔 이상 초고가 시계 판매액은 4배 이상 급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저(低)로 주가 및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자산 효과’를 누리고 있는 부유층 고객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긴자에서 택시로 20분가량 떨어진 도쿄돔. 프로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이다. 야구장 뒤편 음식점 거리는 한산했다. 점심을 먹을 겸 찾아 들어간 라면 가게 한 곳은 아예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주인인 사카모토는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좋아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요미우리 팬들에겐 20% 할인해 주는 행사도 하고, 가게 앞에 커다랗게 요미우리구단 깃발도 거는 등 별짓을 다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신문에는 경기가 회복됐다는 기사가 많은데 어느 나라 얘긴지 모르겠다.”
일본 최대 중고서적 판매체인점인 북오프의 도쿄 메지로역점. 창문에 커다랗게 붙여 놓은 글씨가 눈길을 잡았다. ‘12월31일 폐점’. 매장 점원은 “값싼 중고책이나 CD가 팔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북오프는 올 회계연도에 18억엔의 경상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작년(24억엔)에 비해서는 20% 이상 줄어든 규모다.
작년 말 모습을 드러낸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금융완화다. 돈을 잔뜩 풀어 경제 전반에 활력을 돌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외환 및 주식시장에서는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엔·달러 환율은 103엔 후반까지 올랐다. 엔화 가치는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기대한 주식시장도 연중 최고치로 화답했다.
그러나 바닥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엔화 약세와 주가 상승이 기업의 임금 상승이나 지출 확대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7~9월) 내수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0.1%, 기업의 자본 투자는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모리타 초타로 SMBC니코증권 수석 투자전략가는 “아베노믹스의 금융완화 정책이 실물경제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며 “정부의 지출 역량이 다하면 일본 경제가 절벽 끝에서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년이 더 문제다.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충격파가 클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고미네 다카오 호세이대 교수는 “내년엔 큰 폭의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단언했다. 일본경제연구센터가 제시한 일본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6%. 그러나 내년엔 1% 미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법인세 인하 방침이 보류되는 등 야심 차게 쏘아 올린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성장 전략)도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양상이다.
한때 70%를 오르내리던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최근 들어 특정비밀보호법안 등 정치적 이슈에 휘말리며 40%대로 떨어졌다. 경제 상황마저 악화되면 이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아베의 장기 집권 플랜이 고비를 맞고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같은 백화점 6층. ‘긴자 스타일 워치 페어’라는 플래카드 아래 사람들이 북적인다. 하나에 100만엔을 훌쩍 넘는 고가 명품시계를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이다. 매장 점원인 스기우치는 “올해는 예년에 비해 백화점에서 여러 브랜드의 명품전이 자주 열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가 등장한 이후 일본 백화점업계는 완전히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일본 5대 백화점체인의 매출은 올 들어 거의 매달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긴자 신주쿠 등에 백화점을 갖고 있는 미쓰코시이세탄그룹의 11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8% 늘었다. 비쌀수록 잘 팔렸다. 보석류 매출은 1년 전에 비해 30% 이상 불어났고, 500만엔 이상 초고가 시계 판매액은 4배 이상 급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저(低)로 주가 및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자산 효과’를 누리고 있는 부유층 고객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긴자에서 택시로 20분가량 떨어진 도쿄돔. 프로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이다. 야구장 뒤편 음식점 거리는 한산했다. 점심을 먹을 겸 찾아 들어간 라면 가게 한 곳은 아예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주인인 사카모토는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좋아지지 않았냐는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요미우리 팬들에겐 20% 할인해 주는 행사도 하고, 가게 앞에 커다랗게 요미우리구단 깃발도 거는 등 별짓을 다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신문에는 경기가 회복됐다는 기사가 많은데 어느 나라 얘긴지 모르겠다.”
일본 최대 중고서적 판매체인점인 북오프의 도쿄 메지로역점. 창문에 커다랗게 붙여 놓은 글씨가 눈길을 잡았다. ‘12월31일 폐점’. 매장 점원은 “값싼 중고책이나 CD가 팔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북오프는 올 회계연도에 18억엔의 경상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작년(24억엔)에 비해서는 20% 이상 줄어든 규모다.
작년 말 모습을 드러낸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금융완화다. 돈을 잔뜩 풀어 경제 전반에 활력을 돌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외환 및 주식시장에서는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엔·달러 환율은 103엔 후반까지 올랐다. 엔화 가치는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기대한 주식시장도 연중 최고치로 화답했다.
그러나 바닥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엔화 약세와 주가 상승이 기업의 임금 상승이나 지출 확대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7~9월) 내수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0.1%, 기업의 자본 투자는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모리타 초타로 SMBC니코증권 수석 투자전략가는 “아베노믹스의 금융완화 정책이 실물경제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며 “정부의 지출 역량이 다하면 일본 경제가 절벽 끝에서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년이 더 문제다.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충격파가 클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고미네 다카오 호세이대 교수는 “내년엔 큰 폭의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단언했다. 일본경제연구센터가 제시한 일본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6%. 그러나 내년엔 1% 미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법인세 인하 방침이 보류되는 등 야심 차게 쏘아 올린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성장 전략)도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양상이다.
한때 70%를 오르내리던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최근 들어 특정비밀보호법안 등 정치적 이슈에 휘말리며 40%대로 떨어졌다. 경제 상황마저 악화되면 이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아베의 장기 집권 플랜이 고비를 맞고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