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짐 진 장성택 … 불경죄? > 처형된 장성택(앞줄 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해 5월 롤러스케이트장 시찰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수행하며 뒷짐을 진 채 웃고 있다.  연합뉴스
< 뒷짐 진 장성택 … 불경죄? > 처형된 장성택(앞줄 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해 5월 롤러스케이트장 시찰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수행하며 뒷짐을 진 채 웃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이자 자신의 후견인이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하면서 주요 죄명으로 ‘국가전복 음모’라며 군사 쿠데타 획책까지 포함시켰다. ‘현대판 종파의 두목’ ‘불순 세력 규합’ ‘분파 형성’ 등을 거론함으로써 북한 내에 ‘피바람’이 이어질 전망이다. 북한은 장성택을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모든 직책을 박탈한 지 나흘 만에 특별군사재판을 통해 온갖 죄명을 동원, 처형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졌다.


○만고역적·국가전복 음모

북한은 13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판결문에서 장성택을 ‘만고역적’이라고 규정하며 ‘국가전복음모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지난 8일 그의 숙청을 결정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목한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보다 한층 무거운 죄를 지운 것이다.

판결문은 시종 장성택을 ‘놈’이라고 지칭했다. 판결문은 장성택이 오래전부터 반역행위를 할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시기’에 와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추대되는 시기에 “영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대역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우상화했다는 죄목도 포함됐다. 판결문은 “장성택이 제 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최고영도자를 뜻하는 표현)라고 치켜세웠다”고 했다. 또 장성택이 자신이 속한 부서를 ‘소왕국’으로 만들었다고도 주장했다.

화폐개혁 및 경제 개선 실패도 장성택의 책임으로 돌렸다. 판결문은 장성택이 중요 건설 부문을 심복들에게 넘겨 돈벌이하게 함으로써 평양 등의 국가적 건설사업을 방해하고, 석탄 등 지하자원을 마구 파는가 하면 나선경제무역지구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넘기는 ‘매국행위’도 일삼았다고 했다. 이어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 놈을 부추겨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라고 주장했다.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부장은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10년 처형된 인물이다.

○“벌초만 할 게 아니라 뿌리 뽑아야”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사설을 싣고 김정은에 대한 일심단결을 강조하면서 “이번에 숙청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직권을 남용해 부화타락,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벌초만 할 것이 아니라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것이 당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판결문 역시 ‘장성택의 심복졸개들, 추종자들’ ‘측근과 아첨꾼들’을 언급해 숙청이 추가로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노동당 행정부를 중심으로 당내 주요 간부들이 대상에 오를 것임을 암시한 대목이다. 이미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처형된 가운데 노동당 행정부는 와해되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판결문은 또 장성택이 ‘청년사업부문’ ‘부서와 산하기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 등을 동원해 반역을 꾸몄다고 지적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내각에서 장성택과 함께 대외 경제협력을 추진한 합영투자위원회,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비롯해 장성택이 위원장으로 있던 체육지도위원회 등이 숙청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군부에 대해서도 장성택이 손을 뻗었다고 언급한 만큼 군부 역시 숙청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대북 소식통은 “장성택이 곳곳에 자신의 세력을 심었다고 밝힌 만큼 각 분야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용해·조연준이 숙청 주도

장성택의 실각에서 처형 과정은 북한 권력의 핵심축인 군 총정치국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합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과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숙청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최용해가 최전선에 섰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조연준은 장성택이 당 행정부장으로 인민보안부와 국가안전보위부 등 공안기구를 총괄하면서 조직지도부의 입지를 흔드는 데 대해 불만을 가졌을 것으로 우리 정보당국은 분석한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