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최대 첨단소재업체 도레이, 섬유서 車소재로 주력품 바꿔…미래산업 트렌드 제시하기도
올 매출 1조8500억엔 사상 최대…40년전 개발한 탄소섬유 이제 빛봐
"소재는 '끈기'가 핵심 경쟁력"
티웨이브는 겉모양부터 달랐다.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 자동차를 보는 듯했다. 야마나카 소장은 “엔진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이 탄소섬유 등 첨단 화학소재로 이뤄졌다”며 “장난감 차 같지만 시속 140㎞ 이상을 달리는 진짜 자동차”라고 강조했다. 한쪽에는 모노코크(monocock)라고 불리는 차량의 뼈대가 별도로 전시돼 있었다. 한번 들어보라고 했다. 한손을 사용해도 움직일 정도로 가벼웠다.
티웨이브의 최대 장점도 가볍다는 것이다. 강판으로 만들어진 일반 자동차에 비해 무게가 40% 가까이 덜 나간다. 연료 효율이 30% 정도 개선되는 건 당연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적은 것 역시 강점이다. 일반 자동차의 모노코크는 60개 정도의 부품으로 이뤄진 반면 티웨이브는 단 3개면 충분하다. 그 덕에 소음과 잔고장도 적다는 게 도레이 측 설명이다. 차체가 기본적으로 섬유소재이기 때문에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도 2.5배가량 우수하다. 야마나카 소장은 “미래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항상 소재산업에 있고, 그 중심에 도레이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업계에 인텔이 있다면 자동차 항공 섬유 등의 산업엔 도레이가 있다는 뜻이다. ‘인텔 인사이드’가 아닌 ‘도레이 인사이드’인 셈이다.
도레이는 1926년 창립했다. 원래는 화학섬유 레이온이 주전공이었다. 도레이의 초기 회사 이름이 ‘도요(東洋)레이온’이었던 이유다. 1951년 만들어진 나고야공장은 일본 최초로 나일론 원료를 뽑아냈던 도레이의 핵심 생산시설이다. 지금은 주력 생산품을 섬유에서 자동차 소재로 바꿨다. 2008년에는 자동차부품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오토모티브 센터’라는 별도 조직도 신설했다.
공장 부지는 43만㎡(약 12만7000평)로 널찍하지만 근무하는 직원은 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일반 공장과 달리 최종 제품을 조립하거나 생산하지 않고 연구개발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이 아니라 거대한 연구실 또는 실험실처럼 보인다. 마쓰무라 도시키 홍보과장은 “어떤 공간엔 근무하는 사람 없이 감시카메라만 있다”고 말했다.
도레이는 첨단소재 분야의 독보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30년 전인 1984년 7900억엔 수준이던 매출은 1997년 1조엔을 돌파했고, 올해는 사상 최대인 1조8500억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이익도 올해 창업 이래 가장 많은 1200억엔 수준이 될 전망이다.
세계 어느 제조업체든지 소재산업의 중요성은 뼈저리게 느낀다. 새로운 소재 없이 새로운 제품은 존재하기 힘들다. 첨단소재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도레이가 항상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소재 기술은 쉽게 모방하기 어렵다. 해마다 대일 무역역조 개선과 소재산업 육성을 단골 메뉴로 부르짖는 한국도 유독 소재 분야에서 일본에 처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자의 삼성, 자동차의 현대는 있지만 소재산업에 올릴 만한 이름은 마땅치 않다. 어느 산업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셈이다.
도레이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아베 고이치 전무는 도레이의 핵심 경쟁력으로 ‘끈기’를 꼽았다. 대표적인 예가 탄소섬유다. 도레이가 탄소섬유 개발을 시작한 것은 반세기 전인 1961년. 상용화에 성공한 것도 40년이 넘었다. 하지만 좀처럼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하다 2011년 보잉787이 취항하면서 겨우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보잉787은 전체 구조물의 50%가 탄소섬유로 이뤄졌다. 아베 전무는 “다른 회사들이 따라하기 힘든 도레이의 핵심경쟁력은 바로 수십 년을 참고 기다리는 지구력”이라며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경영으로는 소재산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소재·부품
소재는 자연 상태의 원재료를 핵심 기술로 합성하거나 분해한 물질. 여러 소재를 넣어 특정 기능을 할 수 있는 부품을 조립, 가공한다. 예를 들어 자연 상태인 산소와 수소, 탄소 등의 화합물인 액정(liquid crystal)이 소재다. 액정을 넣어 만든 패널 부품이 액정표시장치(LCD)며 여기에 백라이트 등을 달면 완제품인 LCD TV가 된다.
나고야=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