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의 ‘야곱의 사다리’(1805, 종이에 수채, 런던 대영박물관)
윌리엄 블레이크의 ‘야곱의 사다리’(1805, 종이에 수채, 런던 대영박물관)
하늘에 떠 있는 노란색의 구체로부터 나선형의 계단이 지상으로 이어진다. 그곳에는 낯선 세계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어떤 이들의 어깨 위엔 날개가 달렸다. 계단의 윗부분은 구체가 발산하는 강력한 빛에 가렸지만 아래쪽에는 푸른 하늘 위에 별이 반짝이고 있다.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겸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야곱의 사다리’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바로 그 시인이다. 블레이크는 어려서부터 영적인 세계를 투시하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는데 그는 그렇게 자기가 본 것들을 토대로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절대자는 선악이나 도덕과는 무관하며 사탄은 인간 내면의 사악한 측면에 불과할 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등 그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상식을 뛰어넘는 주장 속에 의외의 진실이 자리 잡고 있는 법이다.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는 “이 자가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광기 속에는 제정신이었던 바이런이나 월터 스코트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평가했다. 잡스도 블레이크에게서 ‘그 무엇’을 발견한 게 아닐까.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