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패션쇼 > 자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40대 남성들이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지난 10월14일 롯데백화점에서 열린 캐주얼패션쇼에서 직장인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경DB
< 직장인 패션쇼 > 자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40대 남성들이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지난 10월14일 롯데백화점에서 열린 캐주얼패션쇼에서 직장인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경DB
대기업 팀장인 김영훈 씨(45)는 최근 기상시간을 20분 앞당겼다. ‘바를 것’과 ‘입을 것’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매일 샤워를 한 후 토너, 에센스, 에멀션에 이어 비비크림까지 꼼꼼하게 바른다. 금요일마다 있는 ‘캐주얼데이’에는 젊은 감각의 옷을 고르는 것이 숙제다. 지난 금요일 김 팀장은 정장 대신 스포티한 느낌의 ‘블레이저 재킷’을, 구두 대신 캐주얼화인 ‘로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김 팀장은 “한 살이라도 더 젊게 보이고 싶은 것이 사실”이라며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나 자신을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40대 오빠’가 주요 소비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40대 남성의 숫자가 많아진 영향도 있지만, ‘패션과 미용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남성’을 뜻하는 ‘그루밍(grooming)’ 트렌드가 확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관련 제품 판매가 급증하는 것은 물론 남성용품을 한데 모아 놓은 백화점 전문관도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몰 G마켓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남성용 비비크림을 구매한 40대 남성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늘어났다. 40대 남성의 구매 건수 증가를 품목별로 보면 클렌징 용품 47%, 선스프레이 263%, 선밤 162% 등이었다. 박주상 G마켓 뷰티팀장은 “올해 40대 남성의 화장품 구매 건수는 전년보다 15% 증가했다”며 “내년에는 40대 남성 등 중장년층을 겨냥한 상품을 더 더양하게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빠’로 돌아가려는 40대들의 노력은 패션상품 구매행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40대 남성은 ‘영패션’인 후드집업을 전년 대비 277% 많이 구매했고, 정장재킷 대신 입을 수 있는 블레이저 재킷도 92% 더 샀다. 로퍼와 스니커즈 등 캐주얼화를 구매한 40대 남성도 전년 대비 27% 늘었다.

백화점 업계도 남성고객 잡기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중년 남성 고객만을 대상으로 ‘로엘스타일 패션 박람회’를 열었다. ‘로엘’이란 외모에 관심이 많고 자신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인 30~50대 남성을 뜻한다. 박중구 롯데백화점 마케팅팀장은 “한 번 구매한 브랜드를 반복 구매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 로엘족은 패션산업의 마지막 블루오션”이라며 “이번 행사에서는 전년 같은 행사 대비 매출이 21% 증가했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에선 지난 5월 무역센터점에 문을 연 남성전문관 ‘현대 멘즈’가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다. 개관 이후 월평균 매출은 40%, 고객 수는 30%가량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도 강남점에 있는 남성전문관의 1~11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0.1% 증가했다. 여성복 0.4% 증가율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4’에서 “내년 소비 키워드 중 하나는 ‘어른아이 40대’(Kiddie 40s)”라며 “40대의 젊어 보이고 싶은 열망이 커지면서 기능성 남성화장품 시장과 성형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또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반발로 남성과 여성의 스타일이 상호교차되는 ‘젠더리스(genderless)’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