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솔로 탈출 꿈꾸며 강남 나이트 직행…룸 들어온 건 부킹女 대신 마른안주
‘솔로’들에게 연말은 독거노인 못지않게 두렵다. 송년 술자리나 모임은 많지만 춥고 긴 겨울밤을 나 홀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암울하다. 연초만 해도 ‘올해는 다르겠지’라고 한 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해가 저물도록 곁에 아무도 없어 옆구리가 시리기만 하다. 특히 연인에게 ‘최고의 날’인 크리스마스는 솔로에겐 ‘최악의 날’로 꼽힌다.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누구와 함께 들어야 할지도 고민이다. 경험(?)이 많은 솔로들은 연말을 앞두고 어떻게 송년 행사를 치를지 계획을 미리 짜기도 한다. 솔로인 김과장 이대리들의 연말 나기 백태를 소개한다.

◆싱글들의 화려한 연말 파티

회계법인에 다니는 회계사 A씨(여·32)는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저녁 싱글인 여자 친구들과 파티를 열 장소를 물색하느라 바쁘다. 각자 음식 재료를 장만해 와 요리를 해먹기로 한 만큼 부엌이 있는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를 찾고 있다.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호텔식 서비스가 제공되고 객실 내에서 취사, 세탁 등이 가능한 숙박시설이다.

친구들과 함께 드레스 코드도 빨간색으로 맞추기로 했다. 산타클로스를 연상시키는 색으로 통일하면 좀 더 추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A씨는 “남자들처럼 밤새 술 먹고 놀기보다는 밤 11시 정도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기다가 잠을 푹 자고 다음날 아침 깔끔하게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나이트클럽의 악몽

30대 초반의 대기업 직원 B대리(31)는 5년 동안 솔로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자 동료들처럼 서비스드 레지던스에서 파티를 열고 싶어도 친구들이 “우리 사이에 낯 뜨겁게 왜 이러냐”며 “같이 술이나 마시자”는 답만 들었다.

친구들과 만나 물 좋은(?) 곳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지난해 악몽이 떠올라서다. B대리는 작년 12월31일 친구 3명과 물 좋기로 소문난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에 갔다. 미모의 여성들을 보고 고무된 B대리 일행은 룸을 잡은 뒤 비싼 돈을 주고 양주까지 시켰다. 하지만 나이트에 온 지 두 시간이 지나 새해가 됐지만 그의 곁엔 어떤 여성도 있지 않았다. “새해를 맞아 서비스로 마른안주 들어갑니다”라는 종업원의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B대리는 “나이트에 잘못 갔다가 돈만 날리고 돌아왔다”며 “차라리 집에서 TV로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게 나을 뻔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연말이 오히려 더 바빠요”

대부분의 직장인이 연말 분위기에 들뜬다고 하지만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중소업체에 다니는 C과장(37)은 예외다. 그는 회사의 전반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기획팀에서 일한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연말은 신년 사업계획 수립을 앞두고 가장 바쁜 시기다. 쏟아지는 보고서와 발표 자료로 눈코 뜰 새가 없다.

다른 부서에선 연말만 되면 정시 퇴근한다고 하지만 기획팀 직원들은 오히려 연말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엔 여자친구와 뮤지컬을 보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까지 세워놨지만 야근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 일이 계기가 돼 C과장은 결국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내년에는 회사의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 아예 연말 계획을 접은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솔로인 게 나아요. 올 연말엔 회사에서 야근하고 동료들과 소주 한 잔 하는 낙으로 살렵니다.”

◆동병상련…‘느낌 아니까’

굳이 업무가 아니더라도 회사 동료들과 연말을 같이 보내는 일도 있다. SK계열 전자회사 연구원 J씨(29)는 뜻하지 않게 지난해 연말을 선임연구위원과 함께 보냈다.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근무지가 지방이어서 주변에 친구들이 없었던 J씨는 술이라도 신나게 먹자는 심정으로 선임연구위원과 술자리를 함께했다. 그런데 그 선임연구위원은 마침 가족을 해외에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였다. 두 사람은 결국 만취 상태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토로하며 뜨거운 눈물을 나눴다. 이후 둘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가 됐다. J씨는 “동병상련을 겪는 사람끼리 뭉치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며 “외로움을 털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J씨는 올 연말에도 그와 함께 술자리를 가질 계획이다.

◆나이 드니 워킹맘과 함께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는 H팀장(여·38)은 솔로지만 ‘아줌마’들과 주로 어울린다. 나이가 들면서 회사 내 젊은 동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직장생활을 하는 아줌마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한두 번 모임에 나가다 보니 그를 찾는 일도 많아졌다. 자주 찾는 곳은 청담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와인바. H팀장은 “요즘 기혼 여성들이 워낙 잘 가꾸고 피부관리도 자주 받아서 미혼인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한껏 차려입은 아줌마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노는 것도 재밌지만 가끔 그들의 외모에 눌려 박탈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했다.

◆회사 송년 행사라도…

차라리 회사에서 하는 연말 송년 파티에 적극 참석하자는 이들도 있다. 예전 같으면 약속을 핑계로 빠지기 일쑤였지만 솔로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회사 행사에라도 참석해 외로움을 달래보자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체 송년 파티에서 인기가 있는 연예인들의 몸값은 연말에 더욱 치솟는다. 송년 파티 기획부서에서는 성시경, 이적, 장기하 등 여성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가수와 포미닛, 애프터스쿨 등과 같이 남성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두고 골머리를 싸맨다.

외국계 은행 인사부 직원 L과장은 “특히 송년 모임에 적극적인 골드미스와 노총각들이 초청 연예인에 대한 민원을 많이 제기한다”며 “윗분들의 취향을 핑계 삼아 여성 아이돌그룹을 부르는 일이 많다”고 했다.

박신영/강경민/황정수/임현우/박한신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