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세의대가 '성적 줄세우기' 없애는 이유
연세대 의대가 국내 처음으로 학점제를 폐지한다. 내년 본과 1학년 학생들부터 A+에서 F학점까지 총 13단계로 이뤄지던 상대평가를 없애고 통과·비통과로 하는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졸업 후 자신들이 원하는 전문 임상과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의대생들에게 이는 혁명적 변화를 의미한다. 도대체 연세대 의대는 왜 이런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한 것일까.

첫째, 미래 경쟁력은 경쟁에서 벗어나야만 만들어진다는 역설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경쟁을 통해 발전을 이루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더 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한국이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더 극한적으로 경쟁하기’였다. 전 국민은 유치원 입학에서부터 시작해 대학 입학에 이르기까지, 공장 운영에서 해외 바이어들과의 협상에 이르기까지, 옆 집 아이부터 전 세계 동종 업종의 모든 사람들을 다 경쟁자로 여기고 경쟁하는 일에 내몰렸다. 그 결과 우리는 성공했다. 산업화에 성공했고 전 세계가 놀라는 경제 기적을 이뤘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했다. 무한 경쟁 속에서 한국 사회의 정신 세계는 황폐해져 갔고 자살률은 세계 1위가 되어버린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지식사회에서 과거 산업화시대 형태의 ‘무한 경쟁’은 미래의 경쟁력을 키워내는 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무한 경쟁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만의 능력에만 집착하게 해 더 큰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공동의 능력을 만들어 내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경쟁보다도 협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에 미래의 발전이 달려 있다.

연세대 의대는 소단위의 학습공동체를 도입할 계획이다. 경쟁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협력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경험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들이 미래 세계 의료의 리더로 커 갈 것이라 믿기에 내린 결정이다.

둘째, 진짜 미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 학생들이 평소 대학에 요청하는 요구사항은 기숙사 문을 닫는 시간을 현행 밤 12시가 아니라 새벽 2시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그 때까지 공부하고 기숙사로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의대생들이 또 있을까.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최우수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니, 노벨의학상은 반드시 탈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의대생들은 필기시험을 통해 1점이라도 더 받아야 졸업 후에 자신이 원하는 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방대한 내용의 학업 내용을 외우고 또 외운다.

그러나 막상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의가 되고, 나중에 전문의가 돼 활동할 때,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학생 때 외운 내용들이 아니다. 새로운 의학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구능력, 국제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정책 개발능력, 그리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환자들 곁에 다가갈 수 있는 공감능력 등이다. 의사로서, 의학자로서 가장 필요로 하는 그 능력들을 학생들은 암기 위주의 성적 경쟁에 몰두하느라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연세대 의대는 판단했다.

새로운 평가 시스템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암기 능력을 가지고 하는 경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학생 때부터 밤새워 연구를 하는 경험을, 더 넓고 다양한 사회 기관들 속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더 아프고 소외된 환자 곁에서 같이 아파하는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세대 의대는 학생들의 암기력 대신 그 ‘경험’을 평가하고자 한다. 그 경험을 향한 경쟁이 진짜 경쟁력이라 믿기 때문이다.

전우택 <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의학·의학교육학 wtjeon@yuhs.a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