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 이미지 벗어던지고 20~30대 사로잡겠다
지난 13일 서울 신설동 사옥에서 만난 김영신 한국도자기 사장(51·사진)은 말수가 부쩍 많아졌다.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는 그가 요즘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사장은 한국도자기 창업주인 고 김종호 선대 회장의 손주로 2004년 부친인 김동수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국내 1위 도자기회사인 한국도자기는 지난 4일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70주년 기념식을 열지 않았다. 임직원들에게 격려금만 지급했다. ‘지금은 떠들썩하게 창립 행사를 할 때가 아니다’는 게 김 사장의 판단이었다.
한국도자기는 1943년 충북 청주의 도자기공장 ‘충북제도사’로 출발한 토종 도자기 제조업체다. 국내에서 처음 ‘본차이나’ 기술로 도자기를 만들었고 1974년에는 청와대에 납품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최근 성적표는 좋지 않다. 2002년 이후 매출은 500억원 안팎에서 정체 상태다. 영업이익도 10억원을 밑돈다. 외국 유명 브랜드와 저가 중국산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 사장은 “내실과 실속이 중요하다는 게 우리 집안의 가풍”이라며 “회사 설립 70주년을 맞아 ‘제2의 도약’ 같은 거창한 구호 대신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한국도자기는 내년 30% 이상 매출을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조용히 추진하겠다는 것이 김 사장의 얘기다.
그가 이처럼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최근 고급 브랜드 프라우나의 선전 덕분이다. 프라우나는 ‘Profound(심오한)’와 ‘Ona(하나)’의 합성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명품이란 뜻이다. 일반 본차이나보다 3배 강한 최고급 ‘파인 본차이나’ 소재를 썼다. 제품 표면엔 수작업으로 고가의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일일이 부착했다.
도자기에 보석을 붙인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국내 청주공장에서 일하는 한 직원의 아이디어였다. 김 사장은 “해외 최고급 백화점에서 프라우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얼마 전 두바이 공주 결혼식 때 30억원어치를 수출했고 스위스뱅크 등 글로벌 기업들과 정·재계 거물들이 선물용으로 주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라우나 매출은 전체 매출의 25%까지 뛰어올랐다.
프라우나의 모든 제품은 청주 공장에서 생산한다. 주변에서는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공장을 동남아 지역이나 중국으로 옮기라’고 충고하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수출과 품질 관리, 고용 창출, 지역사회 공헌 등 토종 제조업체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인건비가 인도네시아의 10배 수준이지만 그래도 7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자기는 최근 가나아트센터 소속의 젊은 팝아트 화가들과 손잡고 신제품을 내놓았다. 도자기 머그잔과 파스타볼 등에 화려한 캐릭터와 원색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제품들이다. 역세권 멀티숍과 복합쇼핑몰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서 판매하고 있다.
김 사장은 “중장년층의 한국도자기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지만 젊은 층은 해외 브랜드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도자기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목표로 20~30대를 겨냥한 신제품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목표는 ‘200년 이상 가는 도자기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김 사장은 “250년 전통의 독일 빌레로이앤드보흐, 영국 웨지우드처럼 한국도자기를 국내 대표 도자기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