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왼쪽부터), 폴 볼커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벤 버냉키 의장이 16일(현지시간) Fed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왼쪽부터), 폴 볼커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벤 버냉키 의장이 16일(현지시간) Fed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미 중앙은행(Fed) 빌딩 이사회 회의실. 폴 볼커(86), 앨런 그린스펀(87) 전 Fed 의장과 벤 버냉키 현 의장(60), 재닛 옐런 차기 의장(67)이 자리를 함께했다. Fed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Fed가 ‘조촐하게’ 마련한 기념식에서다. 1913년 12월23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의회 상·하원을 통과한 ‘연방준비법’에 서명하면서 지금의 Fed가 탄생했다.

볼커(1979~1987), 그린스펀(1987~2006), 버냉키(2006~)는 Fed 100년 역사에서 최대 격동기에 ‘중앙은행의 역할’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최고 선임인 볼커 전 의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내가 Fed를 이끌 때는 인플레이션이 골칫거리였다”고 회고했다. 1970년대 후반 인플레이션이 13%를 웃돌자 그는 단기금리를 연 20%까지 올리는 초강력 조치를 내놓았다. 당시 정치권과 국민들의 반발이 컸다. 건설회사들은 Fed 빌딩 옆에 건축 쓰레기를 퍼부었고, 농민들은 트랙터로 빌딩을 에워쌌다. 볼커의 고금리 처방으로 물가는 1983년 3%대로 잡혔다. 볼커가 ‘인플레 파이터’로 불린 이유다.

볼커는 “(나와 달리) 버냉키 의장은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제로금리 상황에서 자리를 떠나게 된다”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볼커는 그린스펀에 대해 “위대한 정책조절로 1990년대 인플레 없는 경기호황기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린스펀의 선제적 금리 조절정책을 평가한 것이다.

그린스펀은 주가가 하루 만에 23% 폭락한 1987년 10월19일의 ‘블랙 먼데이’를 회상했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Fed 이사회와 연방은행 총재들 모두 벌벌 떨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Fed는 시중은행에 돈을 무제한 공급하며 금리 인하를 유도하면서 얼어 붙은 투자심리를 달랬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버냉키 의장은 “통화정책의 정당성은 중앙은행이 봉사해야 할 대상인 국민들의 폭넓은 이해와 지지에 달려 있다”며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금리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분기별 기자회견, 대형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발표, 인플레이션 타깃(2%)과 실업률 목표치(연 6.5%·제로금리 유지 기준) 등은 전임자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대표적인 소통 사례다. 그는 “취임 이후 개인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가 Fed의 투명성 제고”라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완화(채권매입 프로그램)를 언급하면서 “Fed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ed 100년 역사에서 첫 여성 수장에 오를 옐런 부의장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