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이라크 T-50경공격기 계약직전 '돌발사태'…"상황 반전시키자"…밤샘 자료준비해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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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피스 - 열정·조정의 리더십 하성용 KAI 사장
첫 내부출신 CEO
KAI 떠난지 2년만에 복귀…조직에 '활력 DNA' 심어
노조 '임단협 무교섭' 화답
'체력 짱' CEO
하루 4~5명 만나 영업…수행 직원들도 혀 내둘러
첫 내부출신 CEO
KAI 떠난지 2년만에 복귀…조직에 '활력 DNA' 심어
노조 '임단협 무교섭' 화답
'체력 짱' CEO
하루 4~5명 만나 영업…수행 직원들도 혀 내둘러
지난 5월 취임한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첫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경영지원본부장(부사장)을 끝으로 KAI를 떠났다가 화려하게 복귀했다. 2년 전 부사장으로 퇴임했을 때 가까운 동료들에게 “CEO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했던 그였다. 하 사장은 CEO 취임 후 “때가 맞았고 운도 따랐다”고 했지만, KAI 직원들은 항공산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노력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첫 KAI 출신 사장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는 컸다. 하 사장은 KAI의 전신인 대우중공업 항공부문 출신이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경영관리본부장을 거치면서 위기에 빠진 KAI의 재무개선 작업을 이끌었다. 매년 임금 및 단체협상 때면 마찰을 빚기 일쑤던 노조는 하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회사에 합의안을 ‘무교섭’하는 결정을 내렸다.
설득과 조정의 리더십
하 사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원을 대폭 교체하고 영업 중심으로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매정한 일이었지만, 적지 않은 임원에게 “회사 발전을 위해 용퇴해 줄 것”을 일일이 부탁하고 양해를 구했다. 회사가 더 성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다행히 큰 잡음 없이 조직 정비를 마무리 지었다.
하 사장은 “성동조선을 이끌던 2년간은 CEO로서 경험을 쌓은 시기인 동시에 KAI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영업 중심의 조직 정비가 꼭 필요했다”고 했다. 2011년 KAI 경영관리본부장에서 물러났던 그는 앞서 KAI 재무구조를 성공적으로 개선한 능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자금난에 빠진 성동조선해양에 ‘구원투수’(대표이사)로 투입됐다.
밖에서 본 KAI는 인사 적체가 심각했고 방산기업 특성상 군과 정부,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어 이런저런 제약도 많았다. 변화를 꾀하려면 조직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성동조선해양 CEO를 지내며 ‘영업맨의 자세’를 새롭게 다진 터였다.
하 사장은 “주문자 생산 방식인 조선업에선 ‘을(乙)’의 입장에서 성심성의껏 고객을 대하고 열정적으로 자사의 장점을 알리고 있다”며 “고객사에서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객관적인 자료를 들이밀며 ‘안 된다’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객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힘든 과정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영업은 다른 업무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 사장은 이런 영업마인드를 방산 수출에 도입하기를 원했다. 그가 영업직원들에게 “KAI는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조업체로서 세계 유수 항공업체와 겨룰 만큼 성장했다. 자신감을 가져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배경이다.
하 사장은 강심장의 CEO로 통한다. 웬만해선 당황하는 법이 없다.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라크 경공격기 겸 훈련기 T-50IQ 수주전에서도 그의 이런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7월 강창희 국회의장이 수주 지원차 이라크를 찾았을 때 하 사장과 영업담당자들도 현지에서 합류했다. (→성동조선해양 CEO 시절 몸으로 배운 ‘영업 마인드’)
강 의장과 함께 이라크 총리와 국방장관 등을 만난 자리에서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현지 고위 인사가 KAI 측과 이미 조율을 마친 납기일과 제품 사양을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이다. 결정권자의 한마디가 중요한 방산업의 특성상 계약 전체가 어긋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보고 체계에 뭔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직원들은 자책하면서 크게 낙담했다. 그러나 그는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업무는 성공과 실패가 있을 뿐이지 저간의 사정이나 자책, 낙담은 있을 수 없다. 상황을 반전시키자”고 직원들을 다독였다.
곧바로 이라크 현지의 보고 경로를 파악하고 다시 자료를 정리했다. 하 사장과 직원들은 그로부터 사흘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는 직원들이 호텔 방문을 두드리면 양말만 신은 채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라크 측에 다시 정확한 자료가 전달됐고, 그 결과 국내 방산수출 역사상 단일 계약으로는 최대 규모인 11억달러어치의 T-50IQ 최종 계약으로 이어졌다.
지방자치단체와 갈등을 빚던 KAI 신규공장 건립도 특유의 강한 설득력을 앞세워 마무리 지었다. 한국형전투기(KF-X)와 소형 민수·무장헬기(LCH/LAH) 개발 사업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심의 과제에 오르도록 한 것도 그의 역할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 사장은 공장 건립을 위해 산청군, 사천시 고위 관계자들을 수없이 만나 협조를 요청했고, 이견이 많아 지지부진하던 KF-X, LAH 개발사업도 국방부와 국회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직원 기 살리는 스킨십 경영
KAI 직원들은 최초의 내부 출신 CEO가 오면서 조직에 활력과 희망이 생겼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 사장은 지난 6월 정부보유지분 매각설이 불거졌을 때와 10월 주가가 주춤했을 때 자사주를 연이어 사들였다. “급작스러운 지분 매각은 없다. KAI를 필두로 한국 항공산업은 발전할 일만 남았다”는 책임경영 의지를 전한 것이다.
하 사장은 1999년 대우중공업 항공부문이 독립해 KAI가 출범했을 때 자신의 미래를 항공산업의 발전에 걸었다. CEO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예정된 계약이 어긋나거나 사업개시가 무산되는 순간을 여러 차례 봤고 두 차례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이끌어야만 했다. 회사를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는 평소는 물론이고 해외 출장길에서도 오전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이상 조깅이나 등산을 한다. ‘CEO는 회사에서 가장 체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조깅을 하면서 하루 일정과 업무를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수첩엔 매일 적어도 4~5명과의 약속이 잡혀 있다. 취임 후 200여일 동안 만난 사람이 600명 이상이다.
직원들과의 스킨십에도 적극적이다. 사천공장으로 출근할 때면 매일 오전 7시 직원 10여명씩을 불러 구내식당에서 조찬 모임을 한다. 직원들이 느끼는 현장에서의 애로를 듣기 위해서다.
10월28일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ADEX)에서는 사흘간 국내외 군 관계자 및 방산사업체 31곳과 면담했다. ‘이 정도는 거뜬하다’며 일정을 소화하는 CEO를 따라다니느라 직원들이 먼저 나가떨어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사장이 발로 뛴 결과물은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KAI 관계자는 “조만간 한국형 기동헬기인 수리온 후속 사업 수주를 앞두고 있는 등 회사에 활기가 넘친다”며 “1조5346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작년과 비교해 올해 4000억원 이상의 매출 증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KAI는 내년 2조원대, 2015년에는 3조원 이상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첫 KAI 출신 사장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는 컸다. 하 사장은 KAI의 전신인 대우중공업 항공부문 출신이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경영관리본부장을 거치면서 위기에 빠진 KAI의 재무개선 작업을 이끌었다. 매년 임금 및 단체협상 때면 마찰을 빚기 일쑤던 노조는 하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회사에 합의안을 ‘무교섭’하는 결정을 내렸다.
설득과 조정의 리더십
하 사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원을 대폭 교체하고 영업 중심으로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매정한 일이었지만, 적지 않은 임원에게 “회사 발전을 위해 용퇴해 줄 것”을 일일이 부탁하고 양해를 구했다. 회사가 더 성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다행히 큰 잡음 없이 조직 정비를 마무리 지었다.
하 사장은 “성동조선을 이끌던 2년간은 CEO로서 경험을 쌓은 시기인 동시에 KAI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영업 중심의 조직 정비가 꼭 필요했다”고 했다. 2011년 KAI 경영관리본부장에서 물러났던 그는 앞서 KAI 재무구조를 성공적으로 개선한 능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자금난에 빠진 성동조선해양에 ‘구원투수’(대표이사)로 투입됐다.
밖에서 본 KAI는 인사 적체가 심각했고 방산기업 특성상 군과 정부,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어 이런저런 제약도 많았다. 변화를 꾀하려면 조직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성동조선해양 CEO를 지내며 ‘영업맨의 자세’를 새롭게 다진 터였다.
하 사장은 “주문자 생산 방식인 조선업에선 ‘을(乙)’의 입장에서 성심성의껏 고객을 대하고 열정적으로 자사의 장점을 알리고 있다”며 “고객사에서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객관적인 자료를 들이밀며 ‘안 된다’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객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힘든 과정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영업은 다른 업무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 사장은 이런 영업마인드를 방산 수출에 도입하기를 원했다. 그가 영업직원들에게 “KAI는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조업체로서 세계 유수 항공업체와 겨룰 만큼 성장했다. 자신감을 가져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배경이다.
하 사장은 강심장의 CEO로 통한다. 웬만해선 당황하는 법이 없다.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라크 경공격기 겸 훈련기 T-50IQ 수주전에서도 그의 이런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 7월 강창희 국회의장이 수주 지원차 이라크를 찾았을 때 하 사장과 영업담당자들도 현지에서 합류했다. (→성동조선해양 CEO 시절 몸으로 배운 ‘영업 마인드’)
강 의장과 함께 이라크 총리와 국방장관 등을 만난 자리에서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현지 고위 인사가 KAI 측과 이미 조율을 마친 납기일과 제품 사양을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이다. 결정권자의 한마디가 중요한 방산업의 특성상 계약 전체가 어긋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보고 체계에 뭔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직원들은 자책하면서 크게 낙담했다. 그러나 그는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업무는 성공과 실패가 있을 뿐이지 저간의 사정이나 자책, 낙담은 있을 수 없다. 상황을 반전시키자”고 직원들을 다독였다.
곧바로 이라크 현지의 보고 경로를 파악하고 다시 자료를 정리했다. 하 사장과 직원들은 그로부터 사흘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는 직원들이 호텔 방문을 두드리면 양말만 신은 채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라크 측에 다시 정확한 자료가 전달됐고, 그 결과 국내 방산수출 역사상 단일 계약으로는 최대 규모인 11억달러어치의 T-50IQ 최종 계약으로 이어졌다.
지방자치단체와 갈등을 빚던 KAI 신규공장 건립도 특유의 강한 설득력을 앞세워 마무리 지었다. 한국형전투기(KF-X)와 소형 민수·무장헬기(LCH/LAH) 개발 사업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심의 과제에 오르도록 한 것도 그의 역할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 사장은 공장 건립을 위해 산청군, 사천시 고위 관계자들을 수없이 만나 협조를 요청했고, 이견이 많아 지지부진하던 KF-X, LAH 개발사업도 국방부와 국회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직원 기 살리는 스킨십 경영
KAI 직원들은 최초의 내부 출신 CEO가 오면서 조직에 활력과 희망이 생겼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 사장은 지난 6월 정부보유지분 매각설이 불거졌을 때와 10월 주가가 주춤했을 때 자사주를 연이어 사들였다. “급작스러운 지분 매각은 없다. KAI를 필두로 한국 항공산업은 발전할 일만 남았다”는 책임경영 의지를 전한 것이다.
하 사장은 1999년 대우중공업 항공부문이 독립해 KAI가 출범했을 때 자신의 미래를 항공산업의 발전에 걸었다. CEO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예정된 계약이 어긋나거나 사업개시가 무산되는 순간을 여러 차례 봤고 두 차례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이끌어야만 했다. 회사를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는 평소는 물론이고 해외 출장길에서도 오전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이상 조깅이나 등산을 한다. ‘CEO는 회사에서 가장 체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조깅을 하면서 하루 일정과 업무를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수첩엔 매일 적어도 4~5명과의 약속이 잡혀 있다. 취임 후 200여일 동안 만난 사람이 600명 이상이다.
직원들과의 스킨십에도 적극적이다. 사천공장으로 출근할 때면 매일 오전 7시 직원 10여명씩을 불러 구내식당에서 조찬 모임을 한다. 직원들이 느끼는 현장에서의 애로를 듣기 위해서다.
10월28일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ADEX)에서는 사흘간 국내외 군 관계자 및 방산사업체 31곳과 면담했다. ‘이 정도는 거뜬하다’며 일정을 소화하는 CEO를 따라다니느라 직원들이 먼저 나가떨어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사장이 발로 뛴 결과물은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KAI 관계자는 “조만간 한국형 기동헬기인 수리온 후속 사업 수주를 앞두고 있는 등 회사에 활기가 넘친다”며 “1조5346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작년과 비교해 올해 4000억원 이상의 매출 증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KAI는 내년 2조원대, 2015년에는 3조원 이상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