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디지털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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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전화번호도 외우지 않는 시대
이러다 기억을 못하게되는건 아닌지…
조강래 < IBK투자증권 대표 ckr@ibks.com >
이러다 기억을 못하게되는건 아닌지…
조강래 < IBK투자증권 대표 ckr@ibks.com >
![[한경에세이] 디지털 치매](https://img.hankyung.com/photo/201312/AA.8160645.1.jpg)
이른바 ‘아날로그’ 시대를 살던 당시 필자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300개를 훌쩍 넘었다. 가족, 친지, 친구는 물론 영업상 만나는 주요 고객 전화번호도 모두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 있었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능력 중 하나는 암기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암기에 자신 있었고, 좋아하는 가요나 팝송 가사쯤은 술술 외우고 다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저장되는 요즘 외우고 있는 번호가 몇 개나 되나 생각해 보니 손에 꼽을 정도다.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 전화번호 수첩은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수첩이 한 사람의 인간관계가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창 영업에 올인하던 때 수첩을 잃어버렸다가 힘들게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아찔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휴대폰을 잃어버려도 아마 비슷한 기분이지 않을까.
휴대폰이 대중화된 지 불과 10년이나 됐나 싶은데, 이제는 인간의 기억 능력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름이든 전화번호든 애써 외울 필요 없이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모든 정보가 눈앞에 재생되니 말이다.
호프데이 때 직원들과 얘기를 하다가 슬쩍 물어보니 부모님 번호도 못 외운다는 직원이 상당수였다. 굳이 외울 필요도, 외우려 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가족 전화번호까지 못 외운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이뿐만 아니라 노래방 기계가 없으면 노래를 못하고, 멀쩡히 다니던 길도 내비게이션이 고장나면 헤매기 일쑤라 한다.
한편으로는 굳이 모든 것을 암기할 필요가 있나, 그 능력을 다른 데 활용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 찜찜하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어느 순간, 우리가 기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때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지나친 기우일까?
조강래 < IBK투자증권 대표 ckr@ibk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