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원전 비리로 국민적 공분을 산 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삼성 부사장 출신을 원전본부장으로 영입했다. 내년에는 31개 처·실장급(1급) 자리 중 절반을 외부 인사로 채우기로 했다. 폐쇄적인 순혈주의가 키운 ‘원전 마피아’를 타파함으로써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하겠다는 의지다.

원전본부장에 삼성맨…순혈주의 깬다

○처·실장 50% 외부 영입

원전본부장에 삼성맨…순혈주의 깬다
한수원은 18일 조직, 인사, 문화 3대 분야 혁신을 통해 원전 비리를 뿌리뽑고 원전 안전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한수원 개혁을 위해 지난 9월 투입된 조석 사장의 혁신 청사진이다. 직원들로부터 ‘꼭 바꿔야 할 점’을 600건 이상 제출받아 만들었다.

조 사장은 “내년을 원전 비리가 없고, 원전 안전을 신뢰받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3대 혁신 분야 중에서는 고위직에 외부 수혈 폭을 확대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번에 공모한 7개 직위 가운데 원전본부장 1명과 홍보실장, 신재생사업실장, 원전건설준비실장, 방사선보건연구원장 등 5명은 외부에서 영입했다.

특히 총 4개 지역별 원전본부장 자리 중 1곳에 삼성중공업 상무와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을 지낸 손병복 씨(사진)를 앉혔다. 한수원이 원전본부장에 외부 인사를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 전 부사장은 삼성엔지니어링에 재직할 때 경영지원실장을 맡아 경영혁신팀을 이끈 인물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대표적 혁신기업인 삼성 출신 인사를 영입한 것은 조직문화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또 다른 원전본부장에 사상 처음으로 기술직이 아닌 사무직군(우중본 한수원 인재개발원장)을 선임한 것도 의미가 크다. 기술 전문직 위주로 형성돼온 ‘원전 마피아’의 고리를 끊으려는 포석이다. 내년에는 처·실장직 역시 더 개방해 현재 35%인 외부 수혈 비중을 50%로 높이기로 했다.

○부품 공급사 관리 기능 신설

한수원은 올해 초 삼성물산의 건설부문 상무 출신을 구매사업단장으로 영입해 구매 혁신을 예고했다. 이날 구매사업단에 부품 원가 조사와 협력사 관리 기능을 신설한 것은 원전 비리의 다른 한 축인 부품 구매 쪽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다.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등이 협력사와 한수원이 연계돼 발생한 비리였기 때문이다. 경영 활동에 대한 견제와 감시 활동을 하는 품질보증실과 감사실 기능도 강화하기로 했다.

원전 설비의 안전과 정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올해 본사 인력의 22%인 272명을 현장으로 내려보낸 데 이어 내년에도 본사 인력 219명을 현장에 추가 배치할 예정이다. 아울러 재무구조 개선팀을 신설하고 전사적 투자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과잉투자를 막고 경비를 절감하자는 취지에서다.

조 사장은 “투자와 관련해 사업팀에는 되는 이유를 어필하라고 주문했고, 재무팀에는 안 되는 이유를 찾으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50억원 이상 투자 건에 대해서는 무조건 투자심의위원회에 올리라고 했다”며 “1차 투자심의위원회에서는 600억원짜리 투자안을 폐기시키기도 했다”고 공개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