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내륙지방에서도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브랜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한국 기업 진출이 부진한 편이다. 우한에서 열린 한국상품전시회에 참가한 중국인들이 한국산 원액기를 바라보고 있다. 김태완 특파원
중부 내륙지방에서도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브랜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한국 기업 진출이 부진한 편이다. 우한에서 열린 한국상품전시회에 참가한 중국인들이 한국산 원액기를 바라보고 있다. 김태완 특파원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홈쇼핑TV 메이자(美嘉)는 최근 한국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주방용기 화장품 미용용품 등 주력 한국산 제품 판매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요인을 이 회사 박흥렬 사장은 “한국산 제품의 브랜드 파워가 중서부 지역에서 낮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비록 품질이 좋아도 이 지역 중국인이 한국 제품을 적극적으로 사서 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불모지나 다름없는 중서부 지역에 적극 진출하고 있지만 성공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동안 후베이성에만 80여개 한국 기업이 투자했지만 남아 있는 기업은 35곳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절반 가까이는 회사 간판만 걸어 놓은 상태라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후난성 창사도 한류 열풍이 거센 곳으로 꼽히지만 한국 기업의 진출 성공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LG전자가 2008년 브라운관 공장을 철수했고, 현지에 있는 A전자업체는 동남아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난성 정저우에서는 한국 소매 및 서비스업체들이 한국성 건물에 집단 입주한 뒤 마케팅 활동을 펼쳤지만 실패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시안에 대규모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SK 한국타이어 포스코 등이 충칭에 진출하면서 중서부 지역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한국산 제품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현지에서는 한국 기업의 성공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 △지역상권 텃세 △빠른 임금 상승 △낮은 브랜드 인지도 △지방정부 행정의 불투명성 등을 꼽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작성한 ‘중국내수시장 진출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우한 정저우 등 내륙 도시가 △경제적 기반 △소비시장 성장성 △산업기반 등 객관적 투자환경은 뛰어나지만 한국과의 연고성, 지방정부의 우호정책 측면을 따져보면 옌청 옌타이 충칭 등에 비해 낮아 한국 투자자에 대한 수용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커지는 中시장, 밀려나는 한국산] 韓流 타고 후난성 등 서부 몰려가지만…성공기업 손에 꼽을 정도
지역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충칭과 청두 등을 제외하면 서부지역은 신중하게, 그리고 선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반면 동부지역, 특히 산둥성에 대해서는 한국의 전략적 거점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의 산둥성 진출 관문인 칭다오시는 현재 강력한 경제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시내에 있던 전통산업을 모두 외곽으로 밀어내고 빈 자리는 금융·정보기술(IT) 등 새로운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서북쪽에는 블루실리콘밸리를 조성해 첨단장비·해양과학·환경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칭다오시의 업그레이드가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구조 전환에 따라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고 시장 진입 기회도 많아질 수 있어서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벤처기업연구실장은 “한국 기업이 칭다오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칭다오는 여전히 외자에 매력적인 도시”라며 “칭다오~옌타이~웨이하이~다롄으로 이어지는 동북연안벨트와 칭다오~롄윈강~옌청으로 이어지는 동부연안벨트를 한국의 대중국 진출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적 거점을 기반으로 조금씩 내륙으로 진출하는 방식이 유효하다는 지적이다.

칭다오시도 한국에 우호적이다. 파오잉하이 칭다오시 상무부 투자유치처장은 “칭다오시는 한국과 더 차원 높은 협력을 추진하고 싶다”며 “대구 부산 대전 등에 칭다오공상센터를 설립해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민호 칭다오 KOTRA 무역관장은 “칭다오는 한국이 20년간 투자해온 대중국 진출의 전략적 거점”이라며 “인구 1억명에 달하는 산둥성 내수시장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중국사업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은 서부를 가든, 동부를 가든 한국 기업들은 전선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18개 백화점과 168개 할인점 및 편의점을 보유한 유통 거인 대만의 데니스는 중국 진출 성공요인으로 17년 동안 허난성만 집중 공략한 점을 꼽았다. 대만의 ‘85도씨’ 커피는 상하이에서 돌풍을 일으킨 여세를 몰아 베이징에 입성했지만 참담한 좌절을 맛봐야 했다. 문상준 SPC중국베이징법인장은 “중국은 성별로 시장환경도, 소비자 취향도 다른 별도의 시장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시장 접근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베이징·칭다오=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