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뉴스’ >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발표하는 모습이 18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 TV로 중계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 ‘긴급뉴스’ >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발표하는 모습이 18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 TV로 중계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매우 비둘기파적인 테이퍼링이었다.”(스티븐 잉글랜더 씨티그룹 통화시장전략가)

‘테이퍼링(tapering)’은 끝이 조금씩 가늘어지는 모양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이를 양적완화 규모 축소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다. 매달 850억달러씩 사들이던 채권 매입 규모를 조금씩 줄여나간다는 뜻에서다. 이후 테이퍼링은 매파적인 통화정책을 뜻하는 말로 여겨져 왔다. 경기 부양을 위해 쏟아붓던 돈줄을 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금융시장에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시장은 담담했다. 뉴욕증시는 18일(현지시간) 사상 최고치로 급등했고 미국 국채 가격도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의 힘

양적완화를 축소한 날 주가가 급등한 건 어느 때보다 비둘기파적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 덕분이었다. Fed는 그동안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현재 제로(0~0.25%) 수준인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날 성명서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실업률이 6.5% 이하로 내려간 후에도 상당 기간 현재의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테이퍼링 이후에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계속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한층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같이 구두로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을 알려줘 시장을 움직이는 정책 수단을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 안내)’라 부른다. 중앙은행들은 보통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펼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Fed는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되자 과거에는 쓰지 않던 정책 수단을 사용해 왔다. 채권 매입으로 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양적완화가 대표적이다.

포워드 가이던스도 이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Fed가 양적완화를 대체할 수단으로 포워드 가이던스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NFJ투자그룹의 벤 피셔는 “Fed가 시장과의 소통을 잘해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 해소에 대기매수세 봇물

버냉키 의장이 처음 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한 건 지난 5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였다. 이후 테이퍼링은 시장의 최대 변수가 됐다. 개선된 고용지표가 발표되면 테이퍼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에 주가가 급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됐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테이퍼링은 주가에 반영됐다. 지난 11월부터는 ‘테이퍼링이 긴축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는 버냉키 의장의 거듭된 메시지가 시장에서 먹혔다.

이달 들어 주가 변동성이 다시 높아진 건 FOMC를 앞두고 정책의 불확실성이 부각되면서다. 하지만 1월부터 채권 매입 규모를 100억달러 줄이겠다는 Fed의 이날 발표로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그동안 관망세를 유지하던 투자자들의 대기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증시가 큰 폭으로 오른 배경이다.

게다가 버냉키 의장은 내년 1월31일 자신의 퇴임 이후에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재닛 옐런 차기 의장도 현재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분명하게 답했다. 버냉키 의장은 “옐런은 우리의 오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