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그린 신윤복의 풍속화 ‘월야밀회’(간송미술관 소장).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는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도 불륜과 이혼, 재혼이 성행했음을 밝히고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그린 신윤복의 풍속화 ‘월야밀회’(간송미술관 소장).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는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도 불륜과 이혼, 재혼이 성행했음을 밝히고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그녀가 나를 배신했으니 어찌 내가 그녀를 생각하겠는가. (중략)엽전 35냥을 받고서 영원히 우리의 혼인관계를 파하고 위 댁으로 보낸다.’

전북대 박물관이 소장한 고문서 ‘최덕현의 수기(手記)’ 중 일부다.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는 ‘을유년 12월20일’에 작성된 이 수기에서 많은 것을 읽어낸다. 먼저 작성 시기. 수기가 한자로 작성된 점, 수기 끝에 사인에 해당하는 손 모양을 그린 점, 받은 돈의 단위가 ‘냥’인 점 등으로 봐서 일제강점기 이전 을유년이 분명하다. 따라서 1885년이나 1825년일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 재질이나 보존상태로 봐서 1765년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음은 수기의 실제 작성자다. 한글로 ‘최덕현 수표’라고 쓴 점으로 봐서 수기는 다른 사람이 쓰고 최덕현은 서명하고 왼손을 그려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수기의 작성자는 그의 아내를 데려간 사람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수기는 1825년 또는 1885년에 최덕현이 자신의 아내와 혼인관계를 청산하고 어느 중인이나 양반댁의 첩으로 들여보내면서 작성해준 문서라고 전 교수는 결론짓는다. 35냥은 일종의 이혼합의금 내지 위자료인 셈이다.

[책마을] 35냥에 이혼합의…古문서 속 조선판 '사랑과 전쟁'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는 전 교수가 이런 식으로 복원해낸 조선의 민낯이다. 관찬사료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는 나오지 않는 조선시대 일상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고문서로 되살렸다. 최덕현의 수기 한 장을 단초로 문서 작성자, 작성 시기, 돈을 주고 그의 아내를 데려간 사람은 물론 수기의 내용처럼 조선시대에 이혼이 가능했는지, 신분이나 시기에 따라 이혼과 재혼 풍습은 어떠했는지 추적하는 식이다. 그 결과 평민이나 천민은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자유로웠으며 조선 전기까지는 왕족이나 귀족도 이혼할 수 있었다고 결론짓는다.

저자가 실마리로 담는 고문서들에 등장하는 인간군상은 참으로 다양하다. 불륜 남녀, 자신을 내쫓고 시어머니에게 욕설까지 한 아내를 고소한 남편, 노름에 빠져 패가망신한 양반, 지방의 양반과 인사 담당 관리의 은밀한 커넥션까지…. 관노청에 근무하는 말썽꾼 아들이 큰 사고를 칠 것을 염려해 과노 일을 면제해달라는 탄원서도 있다.

1602년 박의훤이 자녀 8명에게 재산을 분배하면서 남긴 분재기(分財記)는 불륜과 재혼이 반복되는 결혼생활이 드러난 조선판 ‘사랑의 전쟁’이다. 분재기에 따르면 박의훤은 다섯 명의 여자와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전처 네 명이 모두 불륜을 저지르고 그의 곁을 떠났다. 따라서 박의훤은 분재기를 통해 전처들의 비행을 낱낱이 고발하면서 당시 아내가 낳은 어린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저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고문서를 탐정이 추리하듯 깊이 읽고 의심하며 해석한다. 관리 임명장 뒷면에 적힌 ‘단골(丹骨)’이라는 두 글자를 단서로 조선 후기 지방 양반과 중앙 서리 사이의 은밀한 관계망과 시대적 변천사를 읽어낸다. 고을 수령이 노름 빚을 받아주는 청부업자로 전락한 부패상, 이념적으로 통제된 조선 후기 사회에서 노름이 성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양반과 평민 사이에 있었던 요호부민을 상대로 한 지방 수령의 공명첩 강매, 지위와 대우가 천차만별이었던 처와 첩의 문제 등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