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5대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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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관행·노사 묵시적 합의땐 인정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이 취업규칙에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해 놓고 노사협의회를 통해 논의했다면 노사합의로 인정된다. 노조가 있는 기업에선 노사합의를 통해 단체협약을 정한다. 노조가 없어도 사용자가 정하는 취업규칙에 통상임금 범위를 명시하고 그 내용을 근로자가 잘 알고 있다면 노사합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묵시적 합의나 근로관행도 노사합의에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취업규칙에 통상임금 범위가 규정돼 있다 해도 근로자들이 이 내용을 모르고 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이 경우 노사협의회 등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없는 곳에서는 근로자가 취업규칙에 얼마나 동의했는지에 따라 노사합의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2] 3년치 소급분도 청구 가능한가?
信義성실 원칙 적용되면 청구 不可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근로자는 추가임금에 대한 3년치 소급분 청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청구가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적용되면 이 청구는 기각된다. 신의칙이란 형평에 어긋나고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민사법의 대원칙이다. 이번에 대법원이 밝힌 신의칙 적용의 요건은 세 가지다. △정기상여금에만 적용 가능하며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이를 제외하는 합의를 했으며 △추가임금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사 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합의한 기업의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추가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을 때 이 금액이 기업에 심각한 재정적인 부담을 주면 소송이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3]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기준은?
일시 임금폭증 등 기업현황 따져봐야
일각에선 이에 대해 ‘흑자 기업의 적자 전환’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개별 기업의 구체적인 사정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 추가 시 실질 임금인상률이 교섭 당시 예정한 임금인상률을 훨씬 초과하고 △예상치 못한 과도한 지출이 예상되며 △순이익의 대부분을 추가 지급해야 하는 사정 등을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라고 언급했다. 적자 전환이 아니어도 임금이 폭증하거나 일시적으로 기업이 지출해야 할 비용이 크다면 이 역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당장 자동차 제조사가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로 영업이익 등 실적이 악화되는 것과 같은 산업 전반의 업황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상당한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4] 매년 주는 김장보너스도 통상임금?
재직자에게만 주면 '통상임금' 인정 안돼
대법원은 만약 기업이 김장보너스를 지급하는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이를 줬다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고정성, 일률성이 없는데다 근로의 대가가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김장보너스를 지급하는 시점 전에 퇴직한 근로자에게 근무 일수를 비례해 줬다면 이는 통상임금에 해당된다. 즉, 매년 김장보너스 12만원을 지급하는 D기업이 입사한 지 6개월 된 직원이 퇴직할 때 6만원을 줬다면 고정성이 있기 때문에 통상임금이라는 뜻이다. 설·추석 상여금, 여름 휴가비, 명절귀향비, 생일자지원비 등도 같은 방식으로 따져보면 된다. 앞으로 복지 차원에서 지급하는 각종 지원금은 노사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고정성, 일률성, 정기성을 따져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5] 대법원 판결 적용 시점은 언제부터?
판결후 새로 맺는 임단협부터 적용
대법원은 추가임금에 대한 소급청구를 신의칙을 근거로 제한하면서 “신의칙 법리는 이 판결 이후의 합의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판결 이후 새로운 노사합의 전까지는 신의칙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새 임·단협까지는 소급청구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판결 이후 새로 맺는 임·단협부터 이번 통상임금 범위가 적용되며, 그 이전의 임금에 대해선 소급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부분 임금·단체협상이 1~2년 주기로 체결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 판결 이전과 이후의 수당을 구분하는 것이 더 큰 사회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며 “기존 임·단협이 노사합의와 근로 관행임을 고려하면 새로 체결할 때까지는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노사가 합의로 정식 임·단협 전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수당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최진석/강현우/양병훈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