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인 조형물 ‘LOVE’로 유명한 인디애나의 다양한 작품이 대거 서울을 찾았다. 사간동 갤러리 현대 신관에서 열리고 있는 ‘로버트 인디애나-사랑 그 이상’전에는 빨강, 빨강·금색, 파랑·금색, 금색·빨강 등 네 가지 버전의 ‘LOVE’ 시리즈와 회화, 설치 작품 등 20여점이 나와 있다. 팝아트 거장의 작품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더욱이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내년 1월까지 작가의 대형 회고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인디애나는 1960년대 초부터 ‘LOVE’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낳은 팝아트계의 대중 스타로 군림해 왔다. 자칭 ‘미국 간판장이’라는 그는 미국적 정체성, 개인의 이력, 추상적 개념, 언어의 힘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현대미술의 흐름에 영향력을 끼쳤다.
시카고아트인스티튜드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공부한 인디애나는 ‘LOVE’ 외에도 ‘아트’(ART), ‘먹다’(EAT) 등 단순하고 상징적인 단어와 0부터 9까지의 숫자 등을 과감한 색채로 표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색깔의 조형물 ‘LOVE’ 시리즈가 관람객을 반긴다. 순수미술과 상업디자인을 혼합한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빨강, 금색 등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사랑(LOVE)을 부각했다.
‘LOVE’ 시리즈는 인디애나가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으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숫자들(ONE through ZERO)’ 시리즈 역시 많은 사람에게 시각적인 충격을 준다. 0부터 9까지의 숫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양면성과 다원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죽음 등 인류가 장시간 동안 고민해온 가장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이슈를 형상화했다.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회화와 설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전구가 촘촘히 박혀 불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설치 작품 ‘전기 EAT’는 작가의 1964년 작업이다. 뉴욕월드페어에 선보였으나 다른 참여 작가들이 ‘너무 강렬한 이미지’라고 항의하는 바람에 운영위원회 측에서 전원을 꺼버리기도 했다.
5개의 캔버스를 X자 형태로 재배치한 1998년작 유화 ‘X-7’도 모습을 드러낸다. 17세기 화가 찰스 데무스의 ‘나는 황금의 5라는 숫자를 봤다’를 오마주(경배)한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의 양면성을 회화적 기법으로 묘사했다는 게 화랑 측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정열 갤러리 현대 대표는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50년간 작업 흐름을 살펴볼 기회”라며 “한 해의 끝과 시작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디애나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소중한 메시지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