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채플린'이 되고 싶은 열망
지구에서 억압받지 않고 웃길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우주까지 밀려온 찰리 채플린은 한국에서 만났던 만담가 신불출과 재회한다. 말없이 몸짓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우주 헬멧을 벗고 대화를 나눈다.

“우, 우리가 웃기는 게 우, 우주의 위협이 되면 어쩌지?”(채플린) “벼, 별수 있나요? 또 다른 데로 가야지.”(신불출) “말하는 동안 몇십 초밖에 안 남았어요. 어쩌죠?”(신불출) “어쩌긴? 웃겨야지. 우주 전체를.”(채플린)

극단 연희단거리패 제작으로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레드 채플린’(오세혁 극작, 이윤주 연출)은 젊은 창작인들의 연극적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사회 풍자 코미디다.

연극은 채플린이 꿈속 여행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펼쳐낸다. 조지프 매카시 미국 상원의원이 “채플린이 공산주의자”라고 발표하는 실제 영상을 뒤로하고 채플린은 꿈을 꾼다. 채플린은 ‘모던 타임스’ ‘개의 일생’ ‘위대한 독재자’ 등 ‘빨간색’이란 혐의를 받는 영화 주인공 중 한 명을 매카시식으로 ‘빨갛다’고 지목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침대를 비행기 삼아 아메리카를 떠난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로 날아온 그는 만담 중 ‘체제 위협’ 발언으로 순사들에게 두들겨 맞는 신불출에게 동병상련을 느낀다. 해방 직후 친일파가 득세하는 한국과 ‘천삽 뜨고 허리 펴기’ 운동이 시작된 1950년대 후반의 북한, 2013년 서울역 광장, 거지와 병사가 나오는 시공이 불분명한 어느 곳을 거쳐 우주에 다다른 채플린은 신불출과 함께 힘겹게 코미디를 펼친다. ‘낙인 찍기’로 대표되는 경직된 사회 체제와 코미디 같은 현실에 대한 날 선 비판과 풍자, 예술과 표현의 자유와 한계에 대한 고민이 극 속에 녹아 있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 채플린’이 되고 싶어 하는 젊은 연극인의 열망과 패기를 느낄 수 있다. 공연은 내달 12일까지, 2만~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