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김밥 한 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 손택수
점심에 김밥 한 줄 들고 월드컵공원에 나가 나무 그늘 아래 드는 일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가지와 가지 사이로 들어온
하늘이 나뭇잎 몇을 품고 설레는 걸
뜻 없이 지켜보는 일

옛날에 나는 저 이파리를 보고 아가미를
들었다 놓는 물고기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끊은 지 근 일 년 만에 근질근질 일어나는 수피처럼
시가 떠오를 것 같은 순간마저
그냥 내버려둔 채
하염없이 내버려둔 채

나뭇잎에 내 맘 한 자락 올려놓고
불어오는 바람 따라 그저 무심히 흔들려 보는 일

그런 일, 왜 항상 가장 먼 것은 여기에 있는지
닿을 수 없는 꿈들을 옆에 둔 채 아픈 것인지

아득하여라 김밥 한 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다시는 오지 않을 길고 푸른 여름방학. 하지만 어쩌다 맞는 평일 한나절의 평화가, 지금은 몇 번의 여름방학이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시간이 흐르는 건, 시간의 상대성을 배워 가는 것.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