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초연구지원, 총액관리제로 바꿔야
최근 6년간(2008~2013)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11조1000억원에서 16조9000억원으로, 연평균 8.8% 늘어났다. 과학기술분야 기초연구에 대한 R&D 투자는 더욱 빠르게 증가, 2008년 1조8000억원에서 2013년 4조1000억원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17.9%에 달했다. 이에 따라 정부 R&D 예산 중 기초연구비 비중은 2008년 25.6%에서 올해 35.4%에 달했고, 정부는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이 비중을 2017년까지 4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매우 고무적인 일로, 선진국을 향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학 등 현장의 기초연구자들은 이런 투자 확대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내년에 연구비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졌으며, 내년에는 기초연구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

근본적인 원인은 기초연구비가 증액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연구비는 올해 4조1000억원에서 내년에 4조4000억원으로 증액될 예정이다. 그러나 기초연구비 중 가장 많이 일반 연구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풀뿌리 기초연구인 기본연구비가 올해 2400억원에서 내년에 2308억원으로 3.8% 줄어들 예정으로, 기본연구의 선정률이 올해의 33%에서 내년에 11%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즉, 올해에는 3명 중 1명이 기본연구비를 받았으나 내년에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기본연구 신규과제 수는 1659개였으나, 내년에는 기존 계속 과제 등으로 신규 과제 수가 570개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연구지원사업은 일반연구(기본연구·신진연구 등), 중견연구(핵심·도약), 리더연구(창의·국가과학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풀뿌리 기초연구 저변 확대를 위한 사업은 기본연구와 신진연구로, 기본연구는 교육부가 관리하고, 신진연구를 비롯한 기타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관리한다. 현장의 기초연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본연구비가 내년에 올해보다 삭감되는 것은 창조경제의 첫 단추가 기초연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육부가 예산확보에 등한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창조경제의 주관부서를 미래부로 정한 만큼 기본연구비 관리도 미래부로 옮겨 일관성 있게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초연구지원사업비는 매년 증액되고 있으나 총액 예산 내에서 사업별 선정률 및 선정과제 수가 매년 큰 폭으로 변동하고 있어 기초연구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 이유는 세부 사업별로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확정하고, 예산집행부서는 이를 따르다보니 연구신청자가 많이 몰리는 세부사업은 경쟁률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세부 사업별로 예산을 배정하지 말고, 기초연구지원사업 예산을 총액관리(블록펀딩) 제도로 변경하면 될 것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이 기초연구 예산의 블록펀딩을 통한 높은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현재 기초연구지원사업은 교육부와 미래부의 위임을 받아 한국연구재단이 연구자 선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연구재단은 교육부와 미래부의 상세 지시를 따르고 있을 뿐, 예측 가능한 기초연구사업 지원체계로 개편하고 싶어도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부 R&D 집행구조는 잘못된 것으로, 앞으로 연구자 친화적인 선진국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을 벤치마킹해 한국연구재단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박성현 <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parks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