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괴담사회
옛날에는 소문의 진원지가 우물가와 빨래터였다. 아낙네들은 이곳에 모여 누구 딸이 애를 뱄다는 둥 입방아를 찧었다. 이런 괴담은 빠르게 확대재생산되면서 급기야 처녀가 애를 낳았다더라는 사실로 굳어졌다. 요즘은 우물가와 빨래터가 인터넷과 SNS로 바뀌었다.

엊그제에도 연예인 성매매 의혹과 관련한 실명(實名)이 삽시간에 유포됐다. 당사자로 거명된 사람들이 소문의 진원지를 밝혀달라며 검찰에 고소한 끝에 치명상을 면했다. 하지만 이름만 바꾼 괴담 릴레이는 끊이지 않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온라인에서 명예훼손죄를 저지르는 네티즌이 많다.

한 산부인과 직원은 경쟁 병원에 환자가 몰리자 “밤에는 의사가 없어서 애기를 간호사가 받다가 친구가 고생했어요” 등의 비방댓글을 타인 ID로 수십 차례 달았다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나쁜 소문에는 인간의 욕망과 공포, 시샘과 분노가 동시에 반영돼 있다. 2007년 중국에서는 ‘바나나에 사스 바이러스가 있다’는 괴담 때문에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정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소용 없었다. 광우병 파동 때 ‘뇌 송송 구멍 탁’ 괴담이 판쳤던 것과 같다.

의료 정책과 관련해서 ‘맹장수술비 1500만원’, ‘진료비 10배 폭등’ 등의 황당한 소문이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계속 퍼지는 걸 보면 답답하다. 대형 의료법인으로서 자회사를 운영해온 서울대병원 등과 달리 의료법인이 아니어서 수익사업을 못했던 지방 중소병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미국식 의료민영화와 혼동한 결과다. 철도 민영화는 없다는데도 ‘지하철요금 5000원’이란 괴담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

‘루머사회’를 쓴 심리학자 니콜라스 디폰조는 “어디서든 ‘자판기 효과’(자판기 앞에서 비공식적으로 대화함으로써 생기는 효과)가 일어나는데, 이를 헛소문이라고 무시하거나 방관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2008년 대선 때 이슬람교도라는 괴담을 공식 성명으로 반박하면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밝힌 덕분에 당선됐다.

불확실성과 불안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조금만 의구심을 갖고 공부해보면 괴담의 진위는 금방 알 수 있다. 논란 확산을 우려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제대로 자료조사조차 안 하고 근거없는 소리를 퍼뜨리는 사람들의 마비증세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