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영화' 딱지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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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
“민영화라는 말만 나오면 모두들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민영화와 상관없는 문제인데….”
한 민간발전회사 팀장은 23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이달 말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인 도시가스업법 개정안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올해 4월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의 핵심은 자체소비용으로 천연가스를 수입한 민간업체들끼리 일정 물량의 천연가스를 서로 사고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국내 천연가스 시장은 한국가스공사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포스코, SK E&S, GS칼텍스 등 3개 회사만 자체 소비를 위해 직수입한다. 지난해 국내 수요의 4.5%에 그치는 소량이다. 현재는 직수입한 천연가스 중 남는 물량은 가스공사에 되팔아야 한다. 파는 쪽이 가격 결정권조차 갖지 못한다.
하지만 갑자기 민영화 논란이 불거져 나오면서 민간기업 간의 재판매를 현행대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개정안이 바뀌었다. 가스공사 노조 등이 “민간기업의 재판매 허용은 가스 민영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며 파업을 경고하는 등 강력 반발한 탓이다. 결국 여야는 국내는 금지하되, 해외로만 재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수정했다.
관련 기업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 때 가격협상력을 가지려면 장기간 대량 구매가 전제돼야 하는데, 자체 소비 후 남는 물량을 걱정한다면 협상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SK E&S가 지난해 발전 부문에서 업계 평균의 5배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은 과거 싼값에 직수입한 천연가스 덕분”이라고 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장기계약을 맺은 이 회사의 작년 천연가스 평균원가는 경쟁사들이 가스공사에서 사온 가격의 40%에 불과했다. 10년 새 값이 3배 이상 급등한 여파를 피한 것이다.
재판매 규제 탓에 국내 기업들이 값싼 셰일가스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해외 경쟁사들의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본이 확보한 셰일가스 물량은 우리의 3배를 넘는다. ‘민영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시장 논리를 짓밟고 있다.
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
한 민간발전회사 팀장은 23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이달 말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인 도시가스업법 개정안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올해 4월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의 핵심은 자체소비용으로 천연가스를 수입한 민간업체들끼리 일정 물량의 천연가스를 서로 사고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국내 천연가스 시장은 한국가스공사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포스코, SK E&S, GS칼텍스 등 3개 회사만 자체 소비를 위해 직수입한다. 지난해 국내 수요의 4.5%에 그치는 소량이다. 현재는 직수입한 천연가스 중 남는 물량은 가스공사에 되팔아야 한다. 파는 쪽이 가격 결정권조차 갖지 못한다.
하지만 갑자기 민영화 논란이 불거져 나오면서 민간기업 간의 재판매를 현행대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개정안이 바뀌었다. 가스공사 노조 등이 “민간기업의 재판매 허용은 가스 민영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며 파업을 경고하는 등 강력 반발한 탓이다. 결국 여야는 국내는 금지하되, 해외로만 재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수정했다.
관련 기업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 때 가격협상력을 가지려면 장기간 대량 구매가 전제돼야 하는데, 자체 소비 후 남는 물량을 걱정한다면 협상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SK E&S가 지난해 발전 부문에서 업계 평균의 5배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은 과거 싼값에 직수입한 천연가스 덕분”이라고 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장기계약을 맺은 이 회사의 작년 천연가스 평균원가는 경쟁사들이 가스공사에서 사온 가격의 40%에 불과했다. 10년 새 값이 3배 이상 급등한 여파를 피한 것이다.
재판매 규제 탓에 국내 기업들이 값싼 셰일가스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해외 경쟁사들의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본이 확보한 셰일가스 물량은 우리의 3배를 넘는다. ‘민영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시장 논리를 짓밟고 있다.
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