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마다 이번 국회에서 밀린 법안을 심사한다고 아우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밀린 법안 수가 엄청나다. 기획재정위원회 조세 소위에서 심사하는 법안만 182개나 된다. 미래방송위원회에서도 방송법 등 125개 법안을 심사 중이다. 이 많은 법안을 대체 어떻게 심의한다는 것인가. 자구수정 등을 제외하더라도 날탕에 벼락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상임위 심사대에 오르지 못하고 계류된 법안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부분 상임위가 400건 이상이고 안전행정위원회는 900건이 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물론 이 법안들 중 상당수는 회기를 넘기면서 자동 폐기될 것이다. 14대 국회에서 폐기율이 58.8%에 불과하던 것이 18대 국회에선 82.2%였다. 19대에선 85%를 훨씬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쓰레기의 양산이요 법률의 무덤이 여의도다. 이렇게 만들어내는 법으로 기업을 규제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며 국민의 행동을 규제하게 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미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10일 본회의에서 34개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킨 국회다. 100일이나 되는 정기국회 회기 동안은 들여다보지 않다가 마지막날 폐회 직전에 벼락치기로 법안을 해치운 것이다. 이번에 다시 임시국회를 열어 수도 없이 많은 법안과 예산을 무게를 달아 팔아치울 모양이다.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몰골이다. 실로 처연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의원 입법의 과잉이 문제다. 19대 국회 들어 1년8개월 동안 의원 발의 건수는 7797건(23일 기준)이다. 어제 하루에도 12건이 새로 발의됐다. 하지만 처리(통과나 폐기 등)된 건수는 1484건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원들은 법을 찍어내는 기계 신세로 전락했다. 이익집단치고 입법 로비를 안 하는 곳이 없다. 의원들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법안을 실어나른다. 최근 들어 위헌 법률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것이 대한민국 입법의 현주소다. 법치의 정신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싸구려 정치로 환원되는 기이한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