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각한 신제윤 위원장 >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왼쪽부터), 신제윤 금융위원장,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 심각한 신제윤 위원장 >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왼쪽부터), 신제윤 금융위원장,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규정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통과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공약한 경제민주화 입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개정안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요구보다는 수위가 낮아진 것이지만 당초 예상보다 예외 인정 기준이 강화돼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로 대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위험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에 초점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 발의한 신규순환출자금지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로,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출자총액 제한 대상)에 대해 계열사끼리 신규 순환출자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강화의 원인이 되는 소유·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하도급법 등 다른 경제민주화 법안 논의에 밀려 처리가 지연돼왔다. 여기에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하자는 야당과 신규 순환출자만 규제하자는 여당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법안 심의가 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됐다.

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주다. 여야 간 물밑협상을 통해 야당이 기존 순환출자를 규제하지 않으면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나면서 이견 조율을 이뤘다. 정무위 관계자는 “야당이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 처리가 해를 넘기면 그만큼 대기업들에 시간만 벌어주는 결과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해 처리를 서두른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권리 행사는 예외 인정

개정안은 경영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의 M&A나 증자, 구조조정 등 불가피한 사유로 형성되는 신규 순환출자는 예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우선 회사의 권리 실행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다. 구체적으로 담보권 행사를 비롯해 현금 대신 주식으로 빌린 돈을 받는 대물변제로 생기는 신규 순환출자는 6개월 내에 처분토록 했다. 주주 배정 방식에 의한 유상증자(신주 인수권 행사)에는 1년의 해소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규 순환출자도 예외 허용 대상이다. 회사의 합병·분할, 계열사 간 영업 전부 양수에도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수 있는 6개월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 내 계열회사 간 합병은 신규 순환출자로 간주하지 않고 제한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이 밖에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규 순환출자 구조는 주식을 취득·소유한 날부터 3년간의 해소 유예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박민식 의원은 “기업의 권리 행사, 사업구조 개편, 구조조정 등 예외를 신축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기업 경영활동을 제약하지 않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신규 순환출자를 통한 부실 계열사 지원, 개별 회사 부실의 기업집단 전이 등 과거의 재계 폐해를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적대적 M&A 노출 우려

재계는 신규순환출자금지법이 대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투자 여력이 있는 상위권 대기업조차 경영권 약화 우려 때문에 선뜻 신규 투자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존 순환출자를 금지하지 않은 건 다행스럽지만 기본적으로 순환출자를 대기업의 잘못된 지배구조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예외 인정을 허용한 부분도 일정 기간 유예기간을 두고 순환출자 고리를 반드시 해소할 것을 규정하고 있어 반쪽의 예외 인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선 해외 자본의 적대적 M&A 시도가 거의 없다고 주장하지만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증자로 인한 지분율 하락으로 해외 기업의 적대적 M&A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순환출자

대기업이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수단 중 하나. 대기업집단 계열사인 A사가 B사에 출자하고, B사가 C사에 출자한 후 다시 C사가 A사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다. 각 회사의 자본을 순환해서 출자하기 때문에 적은 자본금으로 여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정호/이태명/추가영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