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다. 젊은 세대에게는 설, 추석 등 고유 명절보다 더 들뜨고 즐거운 날이 바로 오늘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보다 ‘축 성탄’이라는 인사말이 더 익숙한 필자 역시 이날에 대해 따뜻하고 정겨운 기억을 갖고 있다. 경상북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 ‘촌놈’이 무슨 크리스마스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한겨울 추위 속 맞이한 크리스마스, 아니 성탄절은 더욱 특별했다.

성탄절이 되면 누나, 동생 손을 잡고 눈길을 헤쳐 동네 성당에 갔다. 미사를 드리고 나면 프랑스에서 온 덩치 큰 신부가 예쁜 엽서와 함께 과자, 사탕 등을 나눠주곤 했다. 반짝이 가루가 뿌려진 그림 엽서는 신기하기만 했고, 떡과는 차원이 다른 과자의 맛도 어린 마음을 기쁘게 했다. 특히 입안에서 돌돌 굴리며 한참을 녹여 먹는 사탕의 달달함은 신발을 적셔가며 눈길을 헤친 그날의 보람을 최고로 느끼게 해주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크리스마스 대한 기억은 점차 옅어졌다. 연말이면 결산이다 내년 사업계획 수립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송년회 등 온갖 모임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 노릇 한다고 의무적으로라도 선물을 챙기고 외식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의무로부터도 해방됐다.

그렇게 바쁘고 힘든 연말을 수십 년째 보내왔다. 그런데 올해는 그중에도 유달리 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올해 증권업계는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고, D그룹 사태에 이어 H증권 주문 사고 등 대형 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구조조정, 파산, 매각 등 직장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소식이 여의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주식시장을 받쳐줄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소모적인 이념 갈등, 불안정한 남북관계 등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다.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는 문제가 없다.

어린 시절 추위와 배고픔을 단번에 녹여준 사탕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성탄절 선물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단기간 내에 경제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는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 내년에는 어린 시절 즐겁고 설레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강래 < IBK투자증권 대표 ckr@ibk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