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의 독일 남성 외르크는 날씬하고 건강해 보였다. 체질량지수(BMI)도 정상이었지만 그는 갑작스러운 심근경색 때문에 구급차에 실려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즉시 심장도관술 처치를 받았으나 숨졌다. 외르크와 동갑인 스벤도 같은 날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스벤의 키는 176㎝, 체중은 99㎏. BMI는 32로 비만형이다. 하지만 그는 몇 시간 후 상태가 호전돼 단기간의 회복 프로그램을 거쳐 퇴원했다.

왜 뚱뚱한 스벤은 살아남고 날씬한 외르크는 바로 사망했을까. 독일의 비만전문가인 아힘 페터스 뤼베크대 교수는 《다이어트의 배신》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페터스 교수는 2004년 발표한 ‘이기적인 뇌 이론’을 통해 인간의 뇌는 다이어트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연구 결과로 입증한 세계적인 뇌과학자이자 내과의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체중을 줄이면 건강해진다는 의학계의 통설 내지 속설은 잘못된 것이라며 다이어트 만능론을 배격한다. 저자에 따르면 체중 증가는 식욕을 억제하는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요인과 뇌의 에너지 공급 관계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뇌를 진정시키는 코르티솔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코르티솔은 더 많이 분비되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스트레스 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우울증이나 노화 가속화 등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문제는 장기적·지속적 스트레스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유전자 성향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 A형은 사회심리적 스트레스에 예민해 코르티솔 수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스트레스로 가득 찬 상황에서 살아간다. 이에 비해 B형은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적응력을 발휘해 예민했던 반응이 누그러지고 코르티솔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급증하는데 이를 공급하는 방식도 이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A형은 이때 에너지를 체내에 축적된 지방이나 근육조직에서 사용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날씬해지거나 부쩍 마르게 된다.

B형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강도가 약해지고 뇌에 필요한 에너지량도 줄어든다. 또한 뇌의 모드가 바뀌면서 음식으로 뇌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게 돼 체중이 늘어난다.

문제는 그 결과다. A형은 날씬해지는 대신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에서 살게 되고 우울증, 동맥경화, 심장질환 등을 유발하게 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날씬한 A형 사람에게 나타나는 똥배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한다. 이에 비해 B형은 결과적으로 뚱뚱해지지만 스트레스는 한결 덜 받게 된다. 비만은 스트레스에 적응한 결과라는 얘기다. 또 뚱뚱한 사람이 다른 질병에도 더 잘 견딘다는 ‘비만의 패러독스’도 제시한다.

저자는 특히 스트레스와 사회적 불평등의 관계 및 여기서 비롯되는 비만의 문제에 주목한다. 미국과 영국처럼 수입 격차가 심한 국가일수록 비만율이 높다는 것. 따라서 스트레스 요인은 그대로 둔 채 다이어트에만 매달리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며 분노, 슬픔, 질투 같은 감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행동치료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