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랑의 OS'로 자본주의 재부팅하라
신혼 초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따금 아궁이의 연탄불을 꺼뜨렸다. 전쟁과 피란살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50년 전의 일. 그날도 그랬다. 방 안은 얼음장이었고 어항이 꽁꽁 얼어붙었다. 곧잘 헤엄치던 금붕어는 화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부는 뜨거운 물을 끓여 어항에 부었다. 그러자 살얼음 사이에서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조금씩 움직였다. 이내 물고기들은 평소처럼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어항 속을 헤엄쳤다. 이 전 장관은 “미안하다. 절대로 다시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렇게 시작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50여년간 그의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생명이 자본이다》는 ‘생명 자본주의’를 열쇳말로 풀어낸 에세이다. 저자가 주창하는 생명 자본주의란 돈과 물질 대신 생명과 사랑의 자본주의를 구축하자는 것. 저자는 리먼 브러더스가 촉발한 세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던 2008년부터 이 개념을 주장했다. 저자는 “지금의 내 나이처럼 병들고 노쇠하여 더이상 혼자 걸을 수 없게 된 자본주의 문명을 다시 복원하려면 새 OS(운영체제)가 필요하다”며 “생명 자본주의가 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동안의 경제가 죽여서 가치를 만들어냈다면 새로운 시대는 생(生)에서 경제적 효과가 나온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가 남이섬의 관광 명소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다. 남이섬의 가로수 길은 2004년 한 해 동안 26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해 100억원 이상을 썼으며 이를 통해 1000억원 이상의 지역경제 유발효과를 낸 곳. 저자는 “나무를 잘라서 목재로 파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키워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감동을 주는 것이 더 큰 부가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란 설명을 덧붙인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문명의 수면 밖으로 한번 뛰어올라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은 산업 문명의 바다에서 태어나 일하고 성장하며 가난과 번영을 동시에 헤엄치면서 살면서도 그물에 걸려 뭍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 바다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며 “해수면 밖 10m까지 뛰어오르는 날치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뛰어올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