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새해 대내외 증시에 복병 될 '팻 테일 리스크'
새해 증시 전망은 낙관론 일색이다. 하지만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은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것이 예측기관들의 시각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테일 리스크(tail risk)’가 그 어느 해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선 정치·경제·사회 현상들을 특정한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鐘) 모양의 정규분포로 설명한다. 하지만 발생 확률이 적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도가 정규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굵어질 경우 팻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예측기관들이 가장 먼저 꼽는 팻 테일 리스크는 ‘D’ 공포다. 경기가 침체되면서 물가까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과 경기는 회복되는데 물가가 하락하는 디스인플레이션이다. 아직까지 디스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이나 성장률까지 떨어뜨려 디플레이션으로 악화된다면 세계경제는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새해 대내외 증시에 복병 될 '팻 테일 리스크'
올해 하반기 이후 월마트 주도로 ‘바이 아메리칸’ 운동이 전개돼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팻 테일 리스크로 꼽힌다. 이 운동은 민간이 주도하고 있으나 교역 상대국들은 오바마 정부의 수출 진흥책과 제조업 부활정책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각국 통화의 인위적인 평가절하책과 함께 국제통상 환경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 인접국에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近隣窮乏化)로 인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해 전 세계 무역량이 4년간 60% 급감했던 전례가 있다.

시장에 풀린 자금의 향방에 따른 리스크도 주의해야 한다. 지금처럼 금융위기 극복 정도가 8부 능선에 와 있을 때는 한편에서 경기를 추가로 부양해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애프터 크라이시스’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책 혼선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국채값이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

출구전략만큼 추진시기와 선택수단, 사후처리 등 정책의 삼박자를 맞추기 어려운 것도 없다. 경기 회복의 ‘싹이 돋는 단계(green shoots)’에서 성급하게 자금을 회수하면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구전략 추진 이후 미국경기가 조금만 악화되면 곧바로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 우려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효과가 미약하게 나타나면 ‘지브리의 저주’와 ‘세 가지 독배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전자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뒤 금융시장이 난기류를 보인 것을 빗댄 현상이다. 후자는 대니 라이프지거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주장한 것으로 △통화정책 효과 반감 △소비세 인상 △구조개혁 실패를 말한다.

두 비관론은 엔·달러 환율과 상관관계가 높다. 아베노믹스가 의도했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엔화가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최후의 버팀목인 일본 국민의 지지도마저 40%대로 떨어지면서 두 비관론이 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조바심에서 2차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 ‘엔저(低) 쇼크’도 우려된다.

유럽과 관련해 팻 테일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선행(善行)의 역설’이다.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이 도리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기부할 때 그 순수성에 고마워하지 않고 다른 의도부터 생각하는 것이 전형적인 선행의 역설로 볼 수 있다.

올해 7월 이후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나 한국 경제 입장에서 유럽 위기가 극복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로 상징되는 유로존 내 경제여건이 나쁜 회원국들에는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을 더 어렵게 해 선행의 역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 통화도 문제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로 위기 가능성을 점검하면 외환보유액이 적고 경상과재정수지 적자가 큰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태국,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은 ‘고(高)위기 위험국’으로 분류된다. 출구전략 추진 이후 외자 이탈 조짐만 보이면 곧바로 ‘외환위기 낙인 효과’가 고개를 들 수 있다. 중국 등은 과도한 부채에 따른 ‘민스키 리스크’도 우려된다.

이 밖에 예상되는 팻 테일 리스크로는 △비(非)이성적 과열에 따른 미국 주가 폭락 우려 △원자재 가격의 ‘슈퍼 사이클’ 시대 종료 △항로와 자원 확보를 위한 북극전쟁 가능성 △북한의 외화 조달 실패로 인한 붕괴 시나리오 등이 꼽힌다. 새해에는 낙관론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리스크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