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웃과 함께하는 연말연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회사에서는 종무식이라는 걸 한다. 한 해의 업무를 마감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기념하는 시간이다. 요즘 들어 종무식을 생략하고 연말에는 아예 직원들에게 장기 휴가를 준다는 회사도 많다. 그러나 이보다 더 눈에 띄는 건 ‘뜻깊은 연말연시’를 실천해가는 기업들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이색적인 ‘종무식시무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연말이 되면 오케스트라 단원을 회사로 초청해 직원들을 위한 콘서트를 연다는 회사부터 새해 아침 회사 임직원이 모여 등산을 하며 희망찬 한 해를 다짐한다는 회사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이 끈 이야기는 매년 반복되는 관례적인 행사를 ‘이웃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전환한 사례들이었다. 그중에는 예정됐던 종무식 비용을 불우이웃 돕기에 전액 기부한다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봉사 활동하는 것으로 연말 근무를 대체하기도 한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엄동설한을 녹이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적십자사도 다사다난했던 2013년을 마무리하며, 오늘 ‘헌혈 종무식’을 시행한다. 대한적십자사 임직원이 몸소 헌혈을 실천하며 그동안의 업무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려는 계획이다. 또 2014년 시무식에서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서울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떡국 봉사활동’을 하며 희망찬 새해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계획이다. 한 해의 시작과 마무리를 이웃을 섬기는 데에 보냄으로써 직원과 참여 봉사원들 모두가 적십자사의 운동과 정신을 다시 한 번 몸으로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3년 마지막 날이다. 새로운 해가 다가온다. 우리 마음도 다시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는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내 앞의 당신이고 나의 과거라고 한다. 그런데 비밀이 하나 있다. 나의 태도와 생각이 변했더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내 앞의 당신이 변해가고 내 과거의 아픔과 고난도 다르게 해석이 돼 내 삶을 오히려 풍요한 땅으로 만드는 거름이 되는 것이다.

새해에도 나의 변화로 세상이 더욱더 긍정적인 옥토로 변해가기를 바란다. 그 땅 위에 나눔은 뺄셈이 아니고 덧셈인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행복한 해가 되기를 소원한다.

유중근 < 대한적십자사 총재 june1944@redcross.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