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은 운에 좌우
그린스펀 '과열'발언 후 주가 오히려 120% 올라
정부 빚이 침체 부를 수도
경기부양 위한 지출 확대…미래세대에 빚 떠넘기기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74)는 실증적(empirical)인 학자로 유명하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 그는 평생 주식 등 자산가격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분석해왔다. 자신이 1965년 처음 내놓은 ‘효율적 시장이론’을 증명하고 진화시키기 위해서다. 파마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이론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 썼다. 지난해 그와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비이성적 과열’이 대표적이다.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가 겨울을 보내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인근 자택에서 지난 24일 파마 교수를 만났다.
▷현재 주식 등 자산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는 그런 종류의 전망을 하지 않는다. 주가에 거품이 끼었는지 누군가 미리 알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요즘 주가가 많이 올라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주가가 언제 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는 파마 교수가 주장하는 효율적 시장이론의 핵심이다. 시장은 가능한 모든 정보를 효율적으로 받아들여 가격에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에 개별 투자자가 움직임을 예측해 시장을 웃도는 수익률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시장에 수동적으로 연동되는 인덱스 펀드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시장이 이성적이라면 2000년대 초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한 주가 급등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리스크 프리미엄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와 (위험자산인) 주식 가격의 차이를 말한다. 투자자들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하고 주식을 사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가 좋을 때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고 나쁠 때에는 낮아진다. 예를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자자들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크다고 봤고 이는 위험감수성향을 떨어뜨려 주가가 하락했다. 매우 이성적인 반응이다.”
▷로버트 실러 교수는 금융위기 직전의 상승장을 ‘비이성적 과열’로 봤다.
“단지 실러 교수의 믿음일 뿐 비이성적 과열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비이성적 과열을 처음 언급한 건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었다. 1996년 그의 발언 이후 주가는 120% 올랐다가 40% 하락했다. 그렇다면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진단하면 주식을 사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뮤추얼펀드나 헤지펀드 같은 적극적인 머니 매니저들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렇다. 복잡한 논리가 아닌 단순한 산수 문제다. 머니 매니저들 중 어떤 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은 진다. 전체로 보면 ‘제로섬 게임’이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네거티브 게임’인 셈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내는 머니 매니저들이 분명히 있지 않나.
“세상에는 수천, 수만명의 머니 매니저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운이 좋아 높은 수익률을 내면 사람들은 그의 과거 수익률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돈을 맡긴다. 몇 년 전 뮤추얼펀드 3000개의 수익률 자료를 분석한 적이 있다. 수익률은 매니저의 기술보다는 운에 좌우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투자자가 매니저를 고르는 것도 운이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도 마찬가지인가.
“개인투자자보다 수수료를 조금 적게 낼 수는 있어도 네거티브 게임인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연기금이 은퇴자의 돈으로 헤지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투자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나.
“내가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다. 수동적인 인덱스 펀드에 돈을 넣어두고 있다.”
▷Fed의 양적완화 정책은 최근의 주가 상승에 얼마나 기여했다고 보나.
“Fed와 주가는 아무 관련이 없다. Fed는 실제에 비해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양적완화)은 단순히 단기채권을 팔고 장기채권을 사들이는 일이다. 돈을 찍어내는 일이 아니다. 이런 중립적인 활동이 경제나 금융시장에 무슨 영향을 준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나.
“2008년 이전에는 제로에 가까웠던 초과지급준비금이 지금은 2조5000억달러로 늘어났다. 인플레이션을 기대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다. 다만 Fed가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중단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일 년에 100% 이상 물가상승)이 올 수 있다. Fed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실러 교수는 투자와 관련해서는 파마 교수의 효율적 시장이론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당국자들이 이를 시장을 규제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썼다.
“당연히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1만5000페이지에 달하는 도드-프랭크법(미국의 새 금융규제법)은 과도하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시장을 규제할 수는 없다. 규제 자체가 잘못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고, 규제당국이 제대로 집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 등 케인스 학파는 경기침체 때 정부가 빚을 내더라도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지출 확대가 경기를 부양한다는 증거는 없다. 이 역시 크루그먼 교수 자신의 믿음일 뿐이다. 최근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조금 줄었지만 부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지난 5년간 경제가 꽤 성장을 했는데도 부채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건 옛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부에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내려고는 하지 않는다. 빚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고 있다.”
▷부채를 줄이는 데에는 인플레이션도 효과적이지 않나.
“그렇기는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또 하나의 세금이다.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된다.”
▷미국 경제에 대해 회의적인가.
“미국뿐 아니라 서구 사회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막대한 정부 부채 때문이다. 채권투자자들이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금리가 급등해) 또 한번의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
파마 교수는 인덱스펀드 이론 제공…'현대 금융의 아버지'
유진 파마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대 금융의 아버지’로 불린다. 1965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주식시장 가격의 랜덤워크(임의보행)’를 통해 미래 주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시장은 효율적이어서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곧바로 반영한다는 이유에서다. ‘효율적 시장이론’으로도 불리는 그의 이론은 주가지수에 수동적으로 연동되는 인덱스펀드의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파마 교수는 보스턴 터프츠대를 졸업하고 시카고대에서 경영학석사(MBA)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평생 동안 시카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밀턴 프리드먼을 잇는 시카고학파의 좌장 역할을 맡아왔다. 주식 등 자산가격 움직임을 학문적으로 규명한 공로로 그는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꼽혀왔다. 결국 지난해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라스 피터 핸슨 시카고대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다.
LA=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