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색, 블루', 클림트·실러 그림 닮은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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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읽어봐.”
미술대학에 다니는 엠마는 고3 소녀 아델에게 권한다. 사춘기 시절, 성(性)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등불을 밝혀줬던 글이라면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 보편(본질)보다 개인의 특수성(실존)을 강조한 철학이다. 엠마는 그 글을 읽고 이성애가 인간의 본질이라 해도 동성애자인 자신의 실존도 존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엠마와 아델은 서로의 육체에 깊이 빠져든다. 그들은 남성과 섹스하는 것보다 여성끼리 갖는 동성애 관계에서 더 큰 쾌감과 만족을 느낀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러브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린 수작이다. 철학과 미술을 넘나들며 성 정체성을 긴밀하게 연결지으며 육체와 정신의 상관관계를 탐구한다. 또한 동성애가 어둡고 감춰야 할 성이 아니라,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밝고 아름다운 존엄한 성이란 점을 강조한다.
엠마와 아델의 성관계 장면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두 여인이 서로를 갈망하고 탐닉하는 모습은 육체와 정신이 진정으로 합치된 것처럼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 “오르가슴은 본질에 앞선다”고 사르트르의 말을 패러디한 대사처럼 말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리드하지 않고 서로의 역할을 교대로 바꾼다. 각자가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임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아델이 남자친구와 성관계하는 장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잡은 뒤 “좋았어”라고 묻자 아델은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나 아델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다.
두 여인의 성관계 장면은 엠마가 좋아한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관능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동성애가 클림트의 그림처럼 밝은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엠마의 다른 친구는 클림트 그림은 장식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녀는 오히려 성과 육체의 어두운 면을 포착한 에곤 실러의 그림을 탐구한다. 이는 엠마와 아델의 미래를 암시하는 대사다.
아델은 학교 친구들과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감춘다. 그것은 외부의 유혹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또한 노동자 계급인 아델과 엘리트 계급인 엠마 간의 계급적인 충돌도 피할 수 없다. 그들의 동성애가 편견에 가득한 이 사회에서 꿋꿋이 견뎌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연약한 것일까.
엠마 역 레아 세이두, 아델 역 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내면을 들춰내는 연기가 뛰어나다. 튀니지 출신 케시시 감독은 관능의 세계를 가장 아름답게 연출한 감독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는 16일 개봉, 미성년자 관람불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미술대학에 다니는 엠마는 고3 소녀 아델에게 권한다. 사춘기 시절, 성(性)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등불을 밝혀줬던 글이라면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인간 보편(본질)보다 개인의 특수성(실존)을 강조한 철학이다. 엠마는 그 글을 읽고 이성애가 인간의 본질이라 해도 동성애자인 자신의 실존도 존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엠마와 아델은 서로의 육체에 깊이 빠져든다. 그들은 남성과 섹스하는 것보다 여성끼리 갖는 동성애 관계에서 더 큰 쾌감과 만족을 느낀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러브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린 수작이다. 철학과 미술을 넘나들며 성 정체성을 긴밀하게 연결지으며 육체와 정신의 상관관계를 탐구한다. 또한 동성애가 어둡고 감춰야 할 성이 아니라,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밝고 아름다운 존엄한 성이란 점을 강조한다.
엠마와 아델의 성관계 장면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두 여인이 서로를 갈망하고 탐닉하는 모습은 육체와 정신이 진정으로 합치된 것처럼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 “오르가슴은 본질에 앞선다”고 사르트르의 말을 패러디한 대사처럼 말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리드하지 않고 서로의 역할을 교대로 바꾼다. 각자가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임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아델이 남자친구와 성관계하는 장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잡은 뒤 “좋았어”라고 묻자 아델은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나 아델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다.
두 여인의 성관계 장면은 엠마가 좋아한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관능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동성애가 클림트의 그림처럼 밝은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엠마의 다른 친구는 클림트 그림은 장식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녀는 오히려 성과 육체의 어두운 면을 포착한 에곤 실러의 그림을 탐구한다. 이는 엠마와 아델의 미래를 암시하는 대사다.
아델은 학교 친구들과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감춘다. 그것은 외부의 유혹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또한 노동자 계급인 아델과 엘리트 계급인 엠마 간의 계급적인 충돌도 피할 수 없다. 그들의 동성애가 편견에 가득한 이 사회에서 꿋꿋이 견뎌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연약한 것일까.
엠마 역 레아 세이두, 아델 역 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내면을 들춰내는 연기가 뛰어나다. 튀니지 출신 케시시 감독은 관능의 세계를 가장 아름답게 연출한 감독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는 16일 개봉, 미성년자 관람불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