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에서 일하는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김의경 씨는 “주문 전화만 받다가 당선통보를 받으니 꿈만 같다”며 기뻐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콜센터에서 일하는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김의경 씨는 “주문 전화만 받다가 당선통보를 받으니 꿈만 같다”며 기뻐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고등학교 때까지는 책 많이 읽는 친구를 보면 ‘참 재미없게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안이 기울면서 제가 갈 수 있는 곳이 도서관밖에 없더라고요. 채권자들이 온 가족을 쫓아다니는 상황에서 소설만이 제 유일한 일이자 오락이었죠.”

제2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김의경 씨(35)는 집안이 망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도 말투에 물기가 없었다. 그저 어떤 재미있는 스토리를 풀어놓는 이야기꾼의 모습이었다. 그의 당선작 《프리바이터》를 본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는 ‘구라쟁이’로서의 모습이 보인다”고 칭찬한 그대로였다.

《프리바이터》는 23세 때 신용불량자가 되고 33세 때 개인파산자가 된 한 여성의 이야기다. ‘프리바이터’는 자유(free)와 아르바이트의 합성어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작품은 채권자들의 목표가 된 주인공이 법적으로 맞대응하고 서울 전역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을 발랄하게 그렸다. 좋을 리 없는 기억을 담은 자전소설인데도 시종일관 유머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달에 30만원 이상 써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신용불량자가 됐죠. 물론 집안에서 빚을 진 게 잘못이긴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소설로 표현했던 거고요.”

그는 서울 강남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어머니는 사업을 확장하려 밤낮없이 일했다. 그러다가 사채를 잘못 써 일이 틀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은 부도가 났고 그는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내몰렸다. 그때부터 카페 서빙 일부터 회사 직원식당 설거지, 좀도둑 잡는 인간 CCTV, 미술학원 두상 모델 등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정규직 취업도 해봤지만 그때마다 채권자들이 회사로 찾아와 다시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낙관으로 지금껏 견뎌왔다.

“대학교 때는 제가 알바하던 카페에서 고등학교 친구가 미팅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연애는커녕 어떤 남자가 저를 쳐다보면 불안했어요. 미행하는 사람일까 봐서요. 박탈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아르바이트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중ㆍ고등학교 때는 강남에서 부유한 친구들을 보며 자라다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어려운 친구들을 보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대학도 가지 않으려 했던 그는 부모님의 설득에 못 이겨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문학이 좋아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00학번으로 편입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아르바이트 중이다. 당선 통보를 받던 날 오전에도 피자 프랜차이즈 콜센터에서 열심히 전화를 받고 있었다. 당선을 통보받은 그는 “피자 주문 전화만 받다가 당선 전화를 받으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기뻐했다.

“아르바이트를 창피해하거나 꺼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소설 쓰기에는 시간 내기도 좋고 인간 본성을 더 많이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콜센터 일 하면서도 수화기 너머의 캐릭터가 그대로 전달될 때가 많아요.”

그는 소설 쓰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80~90세까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소설을 통해서 제 한계가 어딘지 계속 넘어보고 싶습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 장편소설] 당선자 김의경 씨 "신불자서 파산까지 경험…소설이 유일한 오락"
심사평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연출 훌륭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네 편이다. 소재와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궁핍한 시절’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꾸리고 또 내일의 희망을 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돋보였다.

허정의 《경계에서》는 보조출연자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여러 작품을 오가며 부당한 노동 조건들을 감수하는 대목은 사실적이었으나, 갈등을 만들고 해결책을 찾는 데까진 이르지 못했다.

정해연의 《악의-아내의 다이어리》는 대통령 후보 집안의 연이은 죽음을 추리 형식으로 파고든 작품이다. 얼개는 짰지만 허술한 장면이 너무 많았다. 특히 대통령 후보가 전혀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언행을 계속해 흥미를 반감시켰다.

끝까지 논의한 작품은 이길준의 《스냅드래건》과 김의경의 《프리바이터》였다. 《스냅드래건》은 장중한 문체와 북한 붕괴 이후 지하 도시 ‘나락’을 중심에 둔 흥미로운 설정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소설에 몰아넣어 사건의 진행을 방해하고, 각 에피소드의 참신함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생각 등은 비슷하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강력한 서술로만 일관하지 말고 강약을 조절하면서 선명한 묘사를 더할 필요가 있겠다.

《프리바이터》는 ‘2013년, 아르바이트생 구보 씨의 일일’로 읽힌다. 분초를 다투며 상가수첩을 나눠주는 현재의 날렵함과 각 동네에 얽힌 지난날 아르바이트의 추억담이 교묘하게 겹친다. 빚더미에 앉은 주인공에게 날아드는 공문서들을 제시하면서, 프리바이터의 삶이 결코 즐거운 낭만이 아니라 힘겨운 현실임을 상기시킨 대목도 좋았다. 동네마다 동일한 형식이 반복돼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다는 약점이 지적됐다.

논의 끝에 《프리바이터》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솜씨와 능청스럽게 사건을 짜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높이 샀다. 궁핍한 시절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이야기임을, 이 작가는 구체적인 공간 속에서 치고 빠지고 달려들고 달아나면서 증명했다. 앞으로도 이 세상 구석구석을 살펴, 독자들을 울리고 웃길 매혹적인 이야기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은희경·장은수·김탁환

장편소설 '프리바이터' 줄거리…빚에 시달리는 한 여성, 알바로 재기를 꿈꾼다


온 국민이 신정 연휴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서울 곳곳을 돌며 상가수첩을 돌리고 있다. 온 동네 상가의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가장 구석진 곳에 들어선 이름 없는 가게의 전화번호까지 들어있는 상가수첩. 상가수첩이 없으면 피자도, 치킨도, 짜장면도 시켜먹을 수 없다.

십수 년 전, 스물셋의 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리고 서른세 살의 난 개인파산자가 되었다. 용돈을 한 달에 30만원 이상 써본 적 없는 내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잘나가는 사업가였던 어머니는 구치소 면회소에서 모두 ‘우리들을 위해서’였다고 했다.

첫 번째 직장, 티셔츠 사이로 문신이 비치는 덩치가 회사에 찾아왔다. 두 번째 직장, 채권자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만한 직장생활을 할 수 없던 나는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멋진 ‘프리바이터’로 살기로 결심한다. 삶이 날 조종하도록 두지 않겠다, 내가 내 앞의 길을 만들어가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심이었다. 하지만 ‘멋진 프리바이터’가 되는 것은 상위 1% 직장인이 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선물가게의 인간 CCTV, 사탕 포장, 내레이터 모델, 보습학원 강사, 미술학원 두상모델, 레스토랑 서빙, 위장손님 아르바이트, 가발가게 점원, 고시원 총무, 텝스 시험 스태프…. 그 일들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를 지탱해주는 꿈이 있다. 화가가 되는 것. 나는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죽기 전에 걸작을 남기고 말겠다는 꿈을 아무도 몰래 품고 있다. 학창시절 이후로 잡아본 적 없는 붓.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당선 통보를 받고… "人生은 빚을 '빛'으로 바꾸는 것"

지난해 봄, 회사를 그만두고 다섯 달간 이 소설을 썼다. 일을 하지 않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나로서는 사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섯 달간 소설을 쓰면서 느낀 행복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소설은 빚에 시달리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은 빚에 시달리다가 개인파산, 면책을 받았지만 여전히 교묘한 방법으로 돈을 받아내려는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린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은 운명에 저항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빚더미 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소설 속에는 일부분 개인적 체험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거치면서 깨닫게 됐다.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십수년 전부터 최근까지, 그동안 지나쳐 온 길 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많은 친구들에게(그들에게 나는 분명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이 소설로 안부를 전하고 싶다. 빚을 ‘빛’으로 바꾸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많은 가르침을 주신 이순원 선생님, 처음 소설을 쓰라고 격려해주신 조건상 선생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문우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서울 출생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