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지난달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가장 투명하게 변했다”며 “기업인은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니고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국가가 융성해진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지난달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가장 투명하게 변했다”며 “기업인은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니고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국가가 융성해진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창간50 한경 연중기획] 박용성 회장 "가장 투명하게 바뀐 곳이 기업…과거 관행 이해해 줬으면"
“오랜 기간 쌓여온 문제인데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회사를 살리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데 그런 부분은 좀 이해해 줬으면 합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중앙대 이사장)은 지난달 23일 서울 을지로6가 두산타워 33층 집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조세포탈 및 배임·횡령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 회장은 “효성을 비롯해 롯데와 두산 등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공적자금을 10원도 쓰지 않았다”며 “그동안 기업들이 투명하게 많이 변한 만큼 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회장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기업인을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는데요.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가장 투명하게 변했다고 봐요. 효성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최근에 한 일이 아니잖아요.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계열사를 살리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은 좀 이해해 달라는 겁니다. 롯데와 효성, 두산은 공적자금을 10원도 안 쓴 곳들입니다.”

▷기업가정신이 위축될 뿐 아니라 반기업 정서도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기업이 잘되고 돈을 많이 벌어야 국가가 융성해진다는 컨센서스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업인들이 탐욕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이런 분위기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사업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요즘같이 투명해진 환경에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일탈행위를 하는 기업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제단체나 기업들이 떠든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혁신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정신이 하루아침에 함양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 시대 기업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혁신을 빼고 기업가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늘 새로운 부를 창출해야 하는 기업가는 혁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가까운 예로 삼성이 혁신의 최고 사례예요. 계속해서 혁신을 해왔으니까 경쟁자들을 다 눌렀잖아요. ‘관리의 삼성’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관리만 했으면 혁신적인 휴대폰을 내놓고 소니와 노키아를 무릎 꿇릴 수 있었겠습니까. 혁신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다간 서서히 죽어가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어요.”

▷한국에선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같은 혁신적인 기업인이 나오기 어렵다고 얘기들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창업보육센터를 통해 성공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집 차고에서 창업했잖아요. 그만큼 창업에 대한 규제가 없어야 해요. 정부가 돕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죠. 중앙대에도 창업보육센터가 있길래 실적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전혀 없더군요. 그래서 센터를 없애버렸죠.”

▷그럼 어떻게 창업을 활성화해야 할까요.

“의사가 영리병원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시장과 사업할 기회를 넓혀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죠. 무조건 벤처사업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돼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과 추신수 선수의 성공을 보고 전 국민에게 야구 선수를 하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규제부터 풀어야죠. 규제 완화를 부르짖은 지 수십년이 흘렀는데 진입장벽이 없어진 게 뭐가 있습니까. 기득권 때문에 다 안됐잖아요. 철도 파업도 진입장벽의 문제라고 봅니다. 고속도로에 버스회사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노사문제에서도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규제 완화가 잘 안되는 이유는 뭘까요.

“정치권과 언론이 무슨 사고만 터지면 규제를 풀어줘서 그랬다고 시비를 걸잖아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은 가급적 규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죠.”

▷어떤 규제부터 풀어야 합니까.

“서비스산업이죠. 우리가 살길이에요. 40~50대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빵집과 음식점 등 자영업에 뛰어들어 퇴직금을 다 까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왜 의사 몇 명이 나가서 쌍꺼풀 전문병원을 만들고 주식회사를 세워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못합니까.”

▷공무원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개장한 지 얼마 안된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골프장 오너가 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 도장만 800개 넘게 받았다고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신분으로 공식 석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는데 노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어요. 산업자원부와 대한상의에 합동조사단까지 생겨 관할 군청에 가서 찍어야 할 도장 수를 일일이 샜는데 1000개가 넘었어요. 그만큼 규제 완화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정부 역할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닐까요.

“가수 싸이의 말춤을 정부가 가르쳐줬습니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연예인 중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 욘사마(배용준)를 만들었나요.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 정부입니다. 정부가 왜 무대에 올라가 선수가 되려고 합니까. 정년 연장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왜 기업들에 하라 마라 합니까. 필요하면 기업들이 다 알아서 하는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규제를 없애고 기업에 자유를 많이 주면 됩니다. 기업인들이 신나서 뛰도록 만들면 모든 경제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됩니다.”

▷가장 시급한 경제 현안이 저성장에서 탈출해 일자리를 창출하는것인데요.

“성장할 수 있는 길이 규제 때문에 막히니까 문제죠. 옆에 학교가 있다고 5성급 호텔을 못 짓게 하는데, 호텔이 왜 유흥음식업소입니까. 왜 러브호텔 취급을 합니까. 학교와 호텔이 같은 건물에 있어도 좋다는 정도의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독자생존 가능케 자율 주고 경쟁서 밀릴 땐 퇴로 터줘야"

[창간50 한경 연중기획] 박용성 회장 "가장 투명하게 바뀐 곳이 기업…과거 관행 이해해 줬으면"
중앙대 이사장으로 대학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박용성 회장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정부가 대학에 최대한 자율을 주되 부실화되면 스스로 퇴출할 수 있도록 퇴로를 터줘야 대학도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학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을 유인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두산그룹은 2008년 중앙대를 인수했다.

박 회장은 “400개가 넘는 4년제 대학을 어떻게 다 살릴 수 있겠느냐”며 “시ㆍ도별 국ㆍ공립대는 각 지역의 지식기반 교육기관으로 남게 하고 나머지 대학들은 경쟁을 통해 적자생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 3년제 대학까지 합하면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보다 많다”며 “지방 4년제 대학 중 정원을 못 채우는 곳이 많은 만큼 경쟁력 없는 대학은 망하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대학 구조조정에도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지 억지로 산으로 올리려고 펌프질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할 때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는 부실 사립대 구조조정과 관련, “대학을 팔고 싶어하는 설립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학교 재산을 팔아 얻은 수익의 30%가량은 설립자 몫으로 인정해주고 나머지는 공익 사업에 쓰도록 하면 된다”며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까지 나와 있는데 (정치권에선)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대는 연구하지 않는 교수들은 연구실 등 방을 빼도록 하고 있다”며 “강의시간에 아는 것만 가르치고 논문 한 장 안 쓰는 ‘놀먹(놀고먹는)교수’들을 보면 참을 수 없다”고 했다.

■ 박용성 회장은 직언 잘하는 Mr. 쓴소리…경영 접목해 중앙대 개혁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고(故)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의 셋째아들로 국제유도연맹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대한체육회장,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을 지냈다.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대한상의 회장 시절 정부와 정치권에 직언을 아끼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다. 중앙대 이사장을 맡아 학과 통ㆍ폐합 등 개혁작업을 추진해왔다.

△1940년 서울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뉴욕대 경영대학원 석사 △국제유도연맹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IOC위원 △두산그룹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현)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