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노신사의 눈빛은 청년처럼 형형했다. 올해로 72세.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도전’과 ‘열정’을 얘기할 때는 울산 앞바다를 휘젓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현대중공업을 세계 1등에 올려놓은 한국 조선업계의 대부다. 2011년 현업에서 은퇴해 교육자(현대학원 이사장, KAIST 교수)로 활동하는 그를 지난 연말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만났다. 민 전 회장은 “가진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한국 경제를 성장시킬 유일한 수단이자 방법은 여전히 기업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정 명예회장은 늘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지. 못 한다고 하기 전에 한번 해봤느냐고…. 그게 기업가정신 아니겠어.” 거칠 것 없이 글로벌 무대에 도전했던 그의 지난날과 저성장 시대를 넘어설 지혜를 들어봤다.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경제가 살아나려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처럼 어려움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경제가 살아나려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처럼 어려움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젊은 세대가 창업보다 고시나 공무원시험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이 있다.

“조선·토목 분야는 원래 창업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주로 정보기술(IT) 업종 창업이 많은 것 같다. 그 분야가 창업하기도, 돈을 벌기도 쉽고…. 빌 게이츠도 PC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하나 개발해 돈 버는 것 아닌가. 구글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IT업종 창업은 활발한 편이다.

“맞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창업을 가로막는 분위기가 강하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제도가 그렇다. 한국 사회에선 창업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창업하면 망하기만 하지’라고 한다.”

▷한국은 IT 강국이다. 그런데 왜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젊은 기업가가 나오지 않을까.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좀스러운 기술만 개발하기 때문이다. IT 분야는 잘 모르지만 세계적인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 같은 큰 그림을 그리려는 대국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대·중소기업 관계를 포함해 사회 갈등이 심각하다.

“조선시대 500년간 우리를 지배한 이념이 ‘인(仁)’이다. ‘仁’은 두(二) 사람(人)의 관계, 즉 배려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페어플레이 정신도 없다. 경쟁자가 잘하면 인정하고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는) 무조건 남을 깎아내린다. 마지막으로 대국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전체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가장 심각한 게 국회의원이다. 지금 의원들이 보이는 모습은 전혀 국가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해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셌다.

“참 걱정된다. 맥킨지가 한국 경제 상황을 ‘끓는 물 속 개구리’라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정부 관료들을 보면 ‘머리도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왜 저런 일을 벌일까’란 생각이 든다. 2011년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가 초과이익공유제란 걸 주장했다. 나는 정 총리를 만나 두 가지 측면에서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나 같으면 100의 이익이 날 것으로 예상되면 아예 목표치를 300으로 잡을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기업이 100으로 계획을 낮춰 잡아 협력사와 이익을 나누려 하겠나. 둘째는 기업이 이익이 안 나고 손실이 나면 정부나 협력업체가 보상해주느냐고 물었다. 지금의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를 망하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40년 넘게 기업을 경험했다. 기업가정신이 뭐라 생각하나.


“정주영 명예회장 얘기를 하나 하겠다.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중동 건설산업 진출과 관련해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다. 남들은 다 못 한다고 했는데 정 회장만 ‘중동은 건설 천국’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그 이유를 묻자 정 회장은 ‘1년 내내 비가 안 오니 공사를 매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자재와 물은 어떻게 공급하느냐고 물으니 정 회장은 ‘주변에 돌, 흙, 모래가 지천입니다. 물은 다른 데서 실어오면 되고 정 안되면 담수공장을 하나 지으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이런 게 기업가정신 아닐까.”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기업을 일으켜 열심히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모든 게 넘쳐나는 시대다. 너무 편하게 살다 보니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없어지는 것 같다.”

▷한국 조선산업의 산증인이다. 현대중공업을 세계 조선 1등으로 올려 놓은 비결은 뭔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현대중공업의 모토는 ‘미쓰비시를 따라하자’였다. 그럴 만도 한 게 2001년 미쓰비시 매출은 현대중공업의 18배, 연구개발비는 48배였다. 2001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직후 개술 개발과 수익성 강화 전략을 고민했다. 그 결과 종전까지 매출 50억달러, 영업적자에서 2003년 말 매출 85억달러에 영업이익률 4%를 달성했다. 2010년까지 달성목표(매출 175억달러, 이익률 9%)도 예상을 초과해 매출 300억달러, 이익률 14.7%를 올렸다. 당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우리 실적을 보고 기적이라고 했다. 이전까지 제조업이 올릴 수 있는 최대 이익률은 6%라는 한계를 깼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어떻게 기업을 이끄느냐’가 중요하다.”

▷리더의 역할이 크다는 얘기인가.

“미쓰비시는 2001년 이후 성장이 멈췄다. ‘임기제’ 때문이다. 미쓰비시는 상무 2년, 사장 2년, 회장 2년으로 임기를 철저히 지켰다. 그런 상황에서 CEO는 현상 유지만 하려 들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창조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사여구, 구호만 가득한 것 같다. 창조경제 자체는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정부 관료 강연이나 토론회에 가보면 ‘뭐가 창조경제다’ ‘그래서 뭘 하겠다’라고 명확히 얘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를 되살릴 방법은 무엇인가.

“경제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 대표적인 게 노사문제다. 지금 대기업은 대부분 직원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대 준다. 노조를 달래기 위해서다. 그렇다 보니 다들 자녀를 대학에 보낸다. 주요국 대학 진학률이 30% 안팎인데 한국만 80%를 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못된 노사관계가 교육·취업난을 야기하는것이다. 임금체계도 문제다. 한국 대기업의 임금은 세계적으로 톱클래스 수준이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임금까지 높아지면 기업 경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수십 개의 수당이 있는 현 임금 구조를 단순화하고 급여 수준도 낮추는 방법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영업·마케팅 중시하는 대우 떠나 기술 인정하는 현대로 옮겨
정주영·김우중과의 인연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김 전 회장은 민 전 회장의 경기고 4년 선배다. 김 전 회장이 그를 ‘야 인마~’라고 스스럼없이 부를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1978년 오랜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한국선박해양연구소에 근무하던 청년 민계식(당시 38세)을 김 전 회장은 대우조선공업(현 대우조선해양)으로 불러들여 선박 설계, 연구개발 등 중책을 맡겼다.

하지만 대우와의 인연은 11년 만에 끝났다. 김 전 회장과 뜻이 맞지 않아서다. 민 전 회장은 “대우에 몸담은 내내 김 회장에게 기술 개발과 핵심 역량 집중,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아닌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고, AS를 강화해야 한다는 네 가지 사항을 건의했다”며 “그러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이 “기술은 사오면 되는 거지 무슨 개발이야”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 회장은 영업 지상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그는 “기술 개발을 않겠다면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저는 기술자로 클 생각입니다”라고 말한 뒤 대우를 나왔다.

대우를 그만둔 그는 현대그룹으로 향했다. 정 명예회장은 1990년 수차례 민 전 회장을 만나 ‘현대중공업으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두 사람을 연결해준 사람은 정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준 당시 현대중공업 회장(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정 의원은 민 전 회장과 MIT 동문이자 학군사관후보생(ROTC) 10년 후배다. 정 명예회장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그는 1990년 현대중공업 기술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22년 현대가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후 그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민 전 회장은 “기술 개발이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제안하면 정 명예회장은 그룹 전체 역량을 총동원해 지원해줬다”며 “기술의 중요성을 알아준 정 명예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민계식 전 회장은 한국 조선 1위 굳힌 조선산업의 산증인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조선산업의 산증인’이다. 미국 UC버클리 석사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 출신으로 1979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조선(造船)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1년부터 11년간 현대중공업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일본 미쓰비시를 제치고 글로벌 조선 1위 자리에 올려놨다. 발명가로도 유명하다. 보유 특허만 300건이 넘는다.

△1942년 서울 △경기고 △서울대 조선항공학 △MIT 해양공학 박사 △대우조선해양 상무·전무 △현대중공업 사장(2001년) △현대중공업 회장(2010년) △현대학원 이사장(현), KAIST 교수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