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인사 뒷담화로 끝난 정부 시무식
2일 오전 9시 정부 새해 시무식이 열린 정부세종청사 대강당. 각 부처 장차관들과 1급 고위직 공무원들이 속속 발걸음을 재촉했다. 삼삼오오 모인 공무원들은 악수를 나눈 뒤 의례적인 새해 덕담도 생략한 채 “별일 없나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전날 총리실에서 1급 10명에 대해 일괄사표를 받아 선별처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라 다들 심란한 분위기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총리실 내부에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인사문제를 전체 부처로 확대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부는 “예산안이 이제 막 통과돼 부처마다 세부 업무계획을 짜야 할 시점에 총리실이 분위기만 어수선하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인사적체가 심한 부처의 과장급 간부들은 “1급이 교체되면 후임은 누가 되는 것이냐”며 업무 첫날을 인사 뒷담화로 보냈다. 한 경제부처 고위 간부는 “총리실 설명대로 청와대와 교감하에 이뤄진 것이라면 적어도 부처 한두 곳이 연쇄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지금 분위기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니어서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총리실은 이번 조치에 대해 인사쇄신을 통해 국정운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와의 교감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얘기도 슬쩍 흘렸다.

하지만 이날 일괄사표를 받겠다고 한 장관은 한 명도 없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그나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필요하다면 인사권자의 방침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총리실이 바람을 잡았다’는 얘기다.

1급은 30년 가까이 공직에 있으면서 업무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받아야 올라갈 수 있는 자리다. 능력 외에 관운(官運)이 따라야 한다는 장관이나 차관직 대신 1급을 ‘공무원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 부처의 1급 간부는 “총리실이 우리를 기득권에 연연하는 철밥통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이렇게 해서 누가 신바람나게 일을 하겠느냐”고 씁쓸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