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등 그림자 젖은 화장 비추고(五更燈影照殘粧)/ 이별을 말하려니 애가 먼저 끊누나(欲語別離先斷腸)/ 반 뜰 지는 달에 문 밀고 나서자니(落月半庭推戶出)/살구꽃 성근 그늘 옷깃 위로 가득해라(杏花疎影滿衣裳).”(96쪽)

조선초 문신 정포(1309~1345)가 지은 이별의 시다.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 함축적인 이별의 풍경을 좀 더 생생하게 그려낸다. “창밖이 아슴아슴 밝아온다. 이별의 시간이 왔다. 헤어짐이 안타까운 두 사람은 밤새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퉁퉁 부은 눈, 화장은 지워져 부스스하다….”

[책마을] 漢詩에 담긴 우리의 인생
《우리 한시 삼백수》는 정 교수가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 한시 가운데 7언절구 300여수를 가려 뽑아 우리말로 옮기고 짧은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정 교수는 2002년부터 매일 아침 한시 한 수를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적었다. 약 4년간 작업한 결과 7언절구와 5언절구가 300수씩, 모두 600수가 모였다. ‘시 삼백(三百)’은 동양문화권에서 최고의 앤솔로지란 뜻과 같아서 최고의 걸작만 망라했다는 의미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 책에 실린 시에는 사랑과 인생, 존재와 자연, 풍자와 해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성이 녹아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강극성(1526~1576)이 새해 아침 새 달력을 벽에 걸며 그 여백에 적은 시는 한 해 동안 펼쳐질 파란과 곡절을 예감케 한다. “날씨도 사람도 하도 뜬금없어서(天時人事太無端)/병 앓은 뒤 새 달력을 어이 차마 보리오(新曆那堪病後看)/알 수 없네 올 한 해 삼백예순다섯날(不識今年三百日)/ 비바람 몇 번 치고 기쁨 슬픔 얼말런고(幾番風雨幾悲患).”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