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설비투자에 외환보유액 동원 바람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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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늘리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동원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기계 등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달러를 외환보유액의 일부인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으로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지원 규모는 최대 100억달러 한도이며 구체적인 지원 기간과 대출금리 등 세부 사항은 이르면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대책이 주목받는 것은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강한 한국에서 위기시 비상자금인 외환보유액을 꺼내쓰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이후 정부가 평시에 외환보유액을 기업에 빌려준 것은 2005~2007년뿐이었다. 당시 한국은행이 50억달러 한도에서 기업들에 달러를 내줬다.
정부가 7년 만에 다시 이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내수 살리기’를 위해서다. 경기를 본격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수출만으로 한계가 있고 내수가 회복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진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외환보유액 지원은 투자 확대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 웬만한 위기는 무난히 버텨낼 수 있을 만큼 외환보유액이 충분히 쌓여 있다는 자신감도 깔렸다.
하지만 작년 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융위기 때 뿌렸던 돈을 거둬들이면서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비상자금인 외환보유액을 함부로 꺼내쓰는 것은 안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달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설비투자를 늘리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지원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해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찬성 - 수익성 낮은 달러자산 활용…기업 투자 활성화·이자 축소
정부가 외평기금을 통해 국내 설비투자용 외화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외평기금이 통화 스와프를 통해 국내 은행에 외화를 공급하고 국내 은행은 이 외화자금을 설비투자 목적으로 기자재를 수입하는 기업에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세운 정책의 주요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국내 설비투자 활성화를 통해 고용 확대와 경기 부양을 추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은행의 해외 차입을 줄임으로써 외채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은행이 기업에 외화를 빌려주려면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와야 하는데 외환보유액을 활용하면 이런 차입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첫번째 목적인 설비투자 활성화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 경제의 중요한 과제다. 투자 부진과 성장 잠재력 감소가 우려되고 경기 반등을 이끌 동력을 찾아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설비투자 활성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시설재 수입이 필요한 국내 기업이 손쉽게 외화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면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목적인 외채 감소와 관련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외환보유액 축적의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비대칭적 구조가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쌓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민간부문이 외채를 갚지 못할 때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美 양적완화 축소에도 '꿋꿋'…한국의 외환보유액 충분
하지만 외환보유액의 많은 부분은 국내로 들어온 달러를 사들이면서 축적된 것이고 이에 따라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달러가 부족하게 돼 그 결과 민간부문의 해외 달러 차입은 더 증가한다. 결국 정부부문은 거의 이자를 받지 못하는 달러 자산을 수북이 쌓아놓고 이를 활용조차 못하고 있는 반면 민간부문은 엄청난 이자를 물면서 해외에서 달러를 빌리게 된다.
이는 경제 전체적으로 상당히 비효율적인 현상이다. 반면 정부부문의 달러 자산이 민간에 활용되면 민간부문은 그만큼 해외에서 달러를 빌리지 않아도 된다. 한국 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외채가 줄어들게 되므로 민간부문이 해외에 내던 이자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외환보유액이 충분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외환보유액을 민간에 빌려주면 그만큼 위기 상황에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외환보유액은 아무리 많아도 충분할 수 없으며 특히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시작된 현시점에서 굳이 외환보유액을 줄이는 정책을 채택할 필요가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현재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넘었다는 견해도 많다. 올해 미국의 테이퍼링 우려로 많은 신흥국 금융시장이 흔들린 데 반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이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걸 뜻할 수 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현재 3분의 1 수준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9월 연례협의에서 IMF 측정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이며 대외채무가 늘어나는 속도 이상으로 추가 축적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더욱이 지난해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보유액이 꾸준히 증가했고 올해도 상당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는 만큼 외환보유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외환보유액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향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테이퍼링에도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정부의 외환보유액 활용 정책은 괜찮은 정책 옵션이 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과도하게 많을 경우 민간이 활용하는 방법 대신 정부가 직접 보유 외환 일부를 시장에 매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현 상황과 같이 원화가 달러화 대비 절상되는 추세에서 외환보유액 매도는 원화 절상을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적인 원화 절상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더 많은 외환보유액이 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 민간부문 외채 줄어들면 외환보유액 늘릴 필요없어
반면 정부 정책처럼 외환보유액을 민간이 활용하게 되면 민간부문의 외채 조달이 감소하고 환율에 대한 영향도 상대적으로 적다. 또 외환보유액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외채의 존재다. 평소에 외환을 준비해놓지 않았는데, 갑자기 외채를 갚아야 할 경우 환율 급등으로 금융위기가 터질 수도 있다. 외채가 줄어들면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할 필요가 줄어든다고 할 수 있으므로 외채 감소를 동반하는 외환보유액 감소는 상대적으로 우려가 적은 정책이다.
다만 실제 정책을 추진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민간에 지나치게 낮은 이자율로 외화를 빌려주는 경우 외채는 크게 줄지 않고 민간의 전체 부채만 늘어날 수 있다. 둘째, 외평기금과 국내 은행 간 통화 스와프 비율이 적정해야 한다. 민간이 책임져야 할 위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측면이 외환보유액 제도의 문제점일 수 있는데 이번 정책으로 공공부문의 비용이 증가하면 이런 점이 더 부각될 수 있다.
셋째, 이번 정책 외에 외환보유액을 민간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장·단점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넷째, 경제 상황이 변하는 경우 외환보유액을 직접 시장에 내다 파는 것에 비해 이 정책이 갖는 장·단점을 비교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 이상인지, 향후에도 그럴 가능성이 큰지를 신중하게 고려해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정책이 향후 정부가 쓸 수 있는 유용한 정책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 - '비상금' 함부로 써선 안돼…유동성 훼손·원高 부채질
정부가 새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외환보유액을 이용한 기업 설비투자 지원대책을 내놨다. 외평기금 중 일부를 설비투자용 기자재 수입 용도로 대출하자는 안이다.
하지만 투자 증가는 규제 완화 등 투자 환경 개선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 외환보유액 사용은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외화 유동성 위기 우려도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100억~200억달러 정도는 괜찮다’고 하지만 위기는 항상 마지막 100억~200억달러가 없어서 일어난다.
첫째,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은행 거주자외화예금은 486억달러로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해 난리다. 한국 기업의 해외 보유 외화도 20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투자해서 수익 낼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외환보유액을 대출해 주면 외환보유액 보유 비용은 납세자가 부담하고 편익은 채무자에게 돌아가는 왜곡된 유인구조가 만들어진다.
외환보유액 대부분이 남의 돈…유사시 대거 빠지면 위기초래
둘째, 지난해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 (3450억달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남의 돈이다. 외국인 보유 주식 시가총액이 3700억달러, 외채가 4110억달러다. 외채 없이 4156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쌓고 있는 대만과는 차원이 다르다. 벌어서 쌓은 것이 아니고 남의 돈으로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외환보유액 3450억달러는 많은 듯이 보이지만 기업에 대출해 줄 만큼 넉넉하지는 못하다. 1997년, 2008년 위기의 교훈은 한번 외환부족으로 위기를 당하면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이라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문전옥답을 헐값에 외국인들에게 팔아야 한다. 그래서 보유 비용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대비해 외환보유액을 쌓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산해 보자. 원유 곡물 등 국가 경제 영위를 위해 수입액의 3분의 1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다. 작년 수입액이 5155억달러이므로 1559억달러가 필요하다. 단기외채와 1년 미만 만기 장기외채를 합한 유동외채 규모가 대략 1820억달러로 추산된다. 위기 시에는 연장이 안 되므로 전액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과거 위기 때 33%가 나갔다. 이 비율을 작년 말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에 적용하면 1210억달러 정도다. 모두 합하면 위기 시 필요 외환보유액은 약 4590억달러가 된다. 외환보유액 3450억달러보다 1140억달러가 많다.
이외에 위기가 발생하면 빠져나갈 해외현지금융, 거주자외화예금 등이 대략 1000억달러 정도라고 추산하면 부족액은 2000억달러 이상으로 늘어난다. 2선 외화 유동성인 국가간 통화 스와프자금 1044억달러를 감안해도 약 1000억달러가 부족하다.
넷째, 외환보유액은 위기 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과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수익성은 유동성과 안정성 보장 한도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 기업대출 등 위험자산 투자 시 유동성과 안정성이 문제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쌈짓돈처럼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압권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그해 11월21일 굴욕적인 온갖 의무사항 이행을 감수하며 IMF에 195억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당시 11월 말 외환보유액은 244억달러였다. 그런데 왜 195억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을까. 외환보유액 중 169억달러를 국내 은행 해외지점에 예치해 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부실여신이 돼 회수가 어려워 실제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73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때도 한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무부에서 해외지점 예치를 강행했음은 물론이다. 기업들 투자 몸사리는 이유는 외화부족보다 돈 벌곳 없어서
2005년 한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을 떼어내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했다. 2008년 미국발 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외화 유동성이 경색되자 재무장관은 외환보유액으로 수입대금을 결제하자고 주장했다. 불과 3개월 뒤 한국은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로 가까스로 외화 유동성위기를 넘겼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자금이 유출되고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하자 비싼 금리로 외화를 조달하느니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논쟁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 석상에서 제기됐다. 온 국가가 외화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 꼭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니 아이러니다.
작년 8월 여럿으로 나뉘어 덩치가 작은 정책금융기관들의 외화 조달 어려움으로 플랜트 수주가 벽에 부딪히자 어김없이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해외건설·플랜트 선진화 방안이 발표됐다. 이어 12월 시설재 수입용 외화자금 대출에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 신흥시장국 위기가 예상되고 있고 그 위기가 한국에 전염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다섯째, 요즘처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 고평가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대출하게 되면 외화 수요가 줄어들어 원화값이 더 고평가되는 문제점도 있다. 이러려고 세금이 투입되는 외평기금을 이용한 외환보유액을 쌓아 왔나 싶다.
이제 외환보유액을 외평기금과 한은 발권력으로 나눠 쌓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정상화할 때가 된 듯싶다. 개방경제서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은 따로 갈 수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환율정책이 한은에 귀속됐던 1962년 한은법 개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틈만 나면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자는 재탕 삼탕 주장을 근절하는 일이다.
■ 읽을 만한 자료
△외환보유액의 가용성 논란에 대한 설명(한국은행, 2009년)
△외환보유액의 적정성 평가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 2010년)
△유럽 위기와 외환보유고 점검(현대경제연구원,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환정책(안병찬, 2011년)
△외환보유액의 의의와 효과적인 운용(김정한, 2009년)
주용석/서정환 기자 hohoboy@hankyung.com
이번 대책이 주목받는 것은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강한 한국에서 위기시 비상자금인 외환보유액을 꺼내쓰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이후 정부가 평시에 외환보유액을 기업에 빌려준 것은 2005~2007년뿐이었다. 당시 한국은행이 50억달러 한도에서 기업들에 달러를 내줬다.
정부가 7년 만에 다시 이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내수 살리기’를 위해서다. 경기를 본격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수출만으로 한계가 있고 내수가 회복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진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와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외환보유액 지원은 투자 확대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 웬만한 위기는 무난히 버텨낼 수 있을 만큼 외환보유액이 충분히 쌓여 있다는 자신감도 깔렸다.
하지만 작년 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융위기 때 뿌렸던 돈을 거둬들이면서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비상자금인 외환보유액을 함부로 꺼내쓰는 것은 안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달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설비투자를 늘리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지원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해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찬성 - 수익성 낮은 달러자산 활용…기업 투자 활성화·이자 축소
정부가 외평기금을 통해 국내 설비투자용 외화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외평기금이 통화 스와프를 통해 국내 은행에 외화를 공급하고 국내 은행은 이 외화자금을 설비투자 목적으로 기자재를 수입하는 기업에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세운 정책의 주요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국내 설비투자 활성화를 통해 고용 확대와 경기 부양을 추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은행의 해외 차입을 줄임으로써 외채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은행이 기업에 외화를 빌려주려면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와야 하는데 외환보유액을 활용하면 이런 차입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첫번째 목적인 설비투자 활성화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 경제의 중요한 과제다. 투자 부진과 성장 잠재력 감소가 우려되고 경기 반등을 이끌 동력을 찾아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설비투자 활성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시설재 수입이 필요한 국내 기업이 손쉽게 외화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면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목적인 외채 감소와 관련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외환보유액 축적의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비대칭적 구조가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쌓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민간부문이 외채를 갚지 못할 때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美 양적완화 축소에도 '꿋꿋'…한국의 외환보유액 충분
하지만 외환보유액의 많은 부분은 국내로 들어온 달러를 사들이면서 축적된 것이고 이에 따라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달러가 부족하게 돼 그 결과 민간부문의 해외 달러 차입은 더 증가한다. 결국 정부부문은 거의 이자를 받지 못하는 달러 자산을 수북이 쌓아놓고 이를 활용조차 못하고 있는 반면 민간부문은 엄청난 이자를 물면서 해외에서 달러를 빌리게 된다.
이는 경제 전체적으로 상당히 비효율적인 현상이다. 반면 정부부문의 달러 자산이 민간에 활용되면 민간부문은 그만큼 해외에서 달러를 빌리지 않아도 된다. 한국 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외채가 줄어들게 되므로 민간부문이 해외에 내던 이자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외환보유액이 충분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외환보유액을 민간에 빌려주면 그만큼 위기 상황에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외환보유액은 아무리 많아도 충분할 수 없으며 특히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시작된 현시점에서 굳이 외환보유액을 줄이는 정책을 채택할 필요가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현재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넘었다는 견해도 많다. 올해 미국의 테이퍼링 우려로 많은 신흥국 금융시장이 흔들린 데 반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이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걸 뜻할 수 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현재 3분의 1 수준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9월 연례협의에서 IMF 측정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이며 대외채무가 늘어나는 속도 이상으로 추가 축적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더욱이 지난해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보유액이 꾸준히 증가했고 올해도 상당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는 만큼 외환보유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외환보유액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향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테이퍼링에도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정부의 외환보유액 활용 정책은 괜찮은 정책 옵션이 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과도하게 많을 경우 민간이 활용하는 방법 대신 정부가 직접 보유 외환 일부를 시장에 매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현 상황과 같이 원화가 달러화 대비 절상되는 추세에서 외환보유액 매도는 원화 절상을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적인 원화 절상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더 많은 외환보유액이 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 민간부문 외채 줄어들면 외환보유액 늘릴 필요없어
반면 정부 정책처럼 외환보유액을 민간이 활용하게 되면 민간부문의 외채 조달이 감소하고 환율에 대한 영향도 상대적으로 적다. 또 외환보유액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외채의 존재다. 평소에 외환을 준비해놓지 않았는데, 갑자기 외채를 갚아야 할 경우 환율 급등으로 금융위기가 터질 수도 있다. 외채가 줄어들면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할 필요가 줄어든다고 할 수 있으므로 외채 감소를 동반하는 외환보유액 감소는 상대적으로 우려가 적은 정책이다.
다만 실제 정책을 추진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민간에 지나치게 낮은 이자율로 외화를 빌려주는 경우 외채는 크게 줄지 않고 민간의 전체 부채만 늘어날 수 있다. 둘째, 외평기금과 국내 은행 간 통화 스와프 비율이 적정해야 한다. 민간이 책임져야 할 위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측면이 외환보유액 제도의 문제점일 수 있는데 이번 정책으로 공공부문의 비용이 증가하면 이런 점이 더 부각될 수 있다.
셋째, 이번 정책 외에 외환보유액을 민간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장·단점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넷째, 경제 상황이 변하는 경우 외환보유액을 직접 시장에 내다 파는 것에 비해 이 정책이 갖는 장·단점을 비교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 이상인지, 향후에도 그럴 가능성이 큰지를 신중하게 고려해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정책이 향후 정부가 쓸 수 있는 유용한 정책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 - '비상금' 함부로 써선 안돼…유동성 훼손·원高 부채질
정부가 새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외환보유액을 이용한 기업 설비투자 지원대책을 내놨다. 외평기금 중 일부를 설비투자용 기자재 수입 용도로 대출하자는 안이다.
하지만 투자 증가는 규제 완화 등 투자 환경 개선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 외환보유액 사용은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외화 유동성 위기 우려도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100억~200억달러 정도는 괜찮다’고 하지만 위기는 항상 마지막 100억~200억달러가 없어서 일어난다.
첫째,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은행 거주자외화예금은 486억달러로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해 난리다. 한국 기업의 해외 보유 외화도 20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투자해서 수익 낼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외환보유액을 대출해 주면 외환보유액 보유 비용은 납세자가 부담하고 편익은 채무자에게 돌아가는 왜곡된 유인구조가 만들어진다.
외환보유액 대부분이 남의 돈…유사시 대거 빠지면 위기초래
둘째, 지난해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 (3450억달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남의 돈이다. 외국인 보유 주식 시가총액이 3700억달러, 외채가 4110억달러다. 외채 없이 4156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쌓고 있는 대만과는 차원이 다르다. 벌어서 쌓은 것이 아니고 남의 돈으로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외환보유액 3450억달러는 많은 듯이 보이지만 기업에 대출해 줄 만큼 넉넉하지는 못하다. 1997년, 2008년 위기의 교훈은 한번 외환부족으로 위기를 당하면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이라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문전옥답을 헐값에 외국인들에게 팔아야 한다. 그래서 보유 비용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대비해 외환보유액을 쌓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산해 보자. 원유 곡물 등 국가 경제 영위를 위해 수입액의 3분의 1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다. 작년 수입액이 5155억달러이므로 1559억달러가 필요하다. 단기외채와 1년 미만 만기 장기외채를 합한 유동외채 규모가 대략 1820억달러로 추산된다. 위기 시에는 연장이 안 되므로 전액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과거 위기 때 33%가 나갔다. 이 비율을 작년 말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에 적용하면 1210억달러 정도다. 모두 합하면 위기 시 필요 외환보유액은 약 4590억달러가 된다. 외환보유액 3450억달러보다 1140억달러가 많다.
이외에 위기가 발생하면 빠져나갈 해외현지금융, 거주자외화예금 등이 대략 1000억달러 정도라고 추산하면 부족액은 2000억달러 이상으로 늘어난다. 2선 외화 유동성인 국가간 통화 스와프자금 1044억달러를 감안해도 약 1000억달러가 부족하다.
넷째, 외환보유액은 위기 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과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수익성은 유동성과 안정성 보장 한도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 기업대출 등 위험자산 투자 시 유동성과 안정성이 문제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쌈짓돈처럼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압권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그해 11월21일 굴욕적인 온갖 의무사항 이행을 감수하며 IMF에 195억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당시 11월 말 외환보유액은 244억달러였다. 그런데 왜 195억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을까. 외환보유액 중 169억달러를 국내 은행 해외지점에 예치해 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부실여신이 돼 회수가 어려워 실제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73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때도 한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무부에서 해외지점 예치를 강행했음은 물론이다. 기업들 투자 몸사리는 이유는 외화부족보다 돈 벌곳 없어서
2005년 한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을 떼어내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했다. 2008년 미국발 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외화 유동성이 경색되자 재무장관은 외환보유액으로 수입대금을 결제하자고 주장했다. 불과 3개월 뒤 한국은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로 가까스로 외화 유동성위기를 넘겼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자금이 유출되고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하자 비싼 금리로 외화를 조달하느니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논쟁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 석상에서 제기됐다. 온 국가가 외화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 꼭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니 아이러니다.
작년 8월 여럿으로 나뉘어 덩치가 작은 정책금융기관들의 외화 조달 어려움으로 플랜트 수주가 벽에 부딪히자 어김없이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해외건설·플랜트 선진화 방안이 발표됐다. 이어 12월 시설재 수입용 외화자금 대출에 외환보유액을 이용하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 신흥시장국 위기가 예상되고 있고 그 위기가 한국에 전염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다섯째, 요즘처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 고평가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대출하게 되면 외화 수요가 줄어들어 원화값이 더 고평가되는 문제점도 있다. 이러려고 세금이 투입되는 외평기금을 이용한 외환보유액을 쌓아 왔나 싶다.
이제 외환보유액을 외평기금과 한은 발권력으로 나눠 쌓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정상화할 때가 된 듯싶다. 개방경제서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은 따로 갈 수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환율정책이 한은에 귀속됐던 1962년 한은법 개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틈만 나면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자는 재탕 삼탕 주장을 근절하는 일이다.
■ 읽을 만한 자료
△외환보유액의 가용성 논란에 대한 설명(한국은행, 2009년)
△외환보유액의 적정성 평가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 2010년)
△유럽 위기와 외환보유고 점검(현대경제연구원,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환정책(안병찬, 2011년)
△외환보유액의 의의와 효과적인 운용(김정한, 2009년)
주용석/서정환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