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대립은 19세기 후반 미국을 둘로 갈라놨다. 1861년 4월12일 남부연합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돼 4년간 60만명의 사망자를 낸 뒤 끝난 미국 남북전쟁은 경제적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이기도 하다.

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신생 제조업 보호를 위해 고율의 관세 부과를 추진한 반면 노예제를 기반으로 농업이 발달한 남부는 농산물을 자유롭게 수출하고 값싼 유럽 제품을 수입하길 원했다.(→美남북전쟁 도화선은 관세)

1860년 북부 출신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부의 불만이 증폭됐다.

가뜩이나 노예해방론자로 알려진 링컨이 관세 인상을 추진하자 남부는 연방을 탈퇴했다. 남부 출신 의원들이 의사당을 떠난 뒤 상·하원은 ‘모릴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법안 발의자 저스틴 모릴 의원의 이름을 딴 이 법안은 관세를 2~3배 인상해 미국의 평균 관세율을 49%까지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었다.

남부에선 이 관세를 ‘증오의 관세’로 불렀다. 다른 나라의 보복관세 등으로 남부의 주력 제품인 농산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 공산품 가격은 비싸졌기 때문이다. 1861년 3월2일 이 법안이 발의된 지 한 달여 만에 남북전쟁이 터졌다. 관세법이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미국은 남북전쟁 종전 후에도 고율 관세를 유지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관세율은 32%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미국이 본격적인 자유무역으로 돌아선 것은 2차대전으로 유럽의 경쟁자가 모두 힘을 잃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