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권선주 효과'를 지속하려면
요즘 금융권에서는 ‘권선주 효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이 지난달 23일 한국의 첫 여성 은행장에 선임된 후 여성 금융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현상을 일컫는다. 권 행장 선임 이후 은행들은 잇따라 여성 임원을 탄생시켰다. 대부분 ‘창사 이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서 말이다.

하나금융그룹의 세밑 인사에서는 한꺼번에 3명의 여성 임원이 나왔다. 신한은행도 첫 여성 임원을 배출했다. 대구은행에선 지방은행 최초의 여성 본부장이 등장했다. 모두 권 행장 선임 이후 불과 10여일 동안 이뤄진 변화다.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금융가는 보수적인 동네다. 지금까지 여성 임원은 거의 없었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5만3000명 직원 중 여성이 43%임에도 여성 임원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런 척박한 풍토에서 여성 뱅커들이 전면에 등장하자 금융가에서는 ‘유리 천장’이 깨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마냥 반기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자연스럽게 여성 임원들이 배출되고 있다기보다는, 끼워 맞추기식 억지 인사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권 행장 선임을 계기로 ‘청와대의 뜻’을 읽은 금융회사들이 특유의 생존 본능을 발동시킨 결과라는 해석도 상당하다. 은행 임원이 되기 위한 최고의 스펙은 여성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여성 금융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당장 이번에 임원이 된 사람들은 ‘여성 할당’이 아닌 ‘적재적소’ 인사였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임원보다 한두 단계 아래에 있는 여성 간부들의 행동은 더욱 중요하다. 여성들의 임원 발탁이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게 하려면 스스로 임원후보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갖춰 가야 한다. 그래야만 금이 가기 시작한 유리 천장을 완전히 깨뜨릴 수 있다.

이번에 임원이 된 여성 금융인들의 출발은 괜찮다. 권 행장부터 취임식에서 ‘외풍을 막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은행의 수장으로서 용기 있는 발언이다. 이런 초심이 유지돼 ‘권선주 효과’가 영구히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