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 개방 '태평양파' 멕시코·페루는 안정 성장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각각 대서양 연안에 맞닿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태평양 연안에 가까운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등을 각각 ‘대서양파’와 ‘태평양파’로 나눈 뒤 이들의 경제적 운명이 갈리고 있다고 지난 3일 보도했다. 대서양파는 세계화에 반대하며 보호무역주의를 택한 나라다. 태평양파는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며 적극 개방에 나선 국가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태평양파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25%, 대서양파의 전망치는 2.5%다.
지난 10년간 중남미 경제의 성장을 이끈 건 브라질이 속한 대서양파다. 중국의 고속 성장에 힘입어 글로벌 원자재 시장이 슈퍼사이클(대호황)을 이어간 게 호재였다. 브라질은 철광석, 베네수엘라는 석유, 아르헨티나는 콩 수출에 주력했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를 택하고 자국 기업 보호에 나서면서 외국 기업은 높은 관세와 행정비용을 치러야 했다. 지난해부터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고 원자재 호황이 끝나면서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칠레와 멕시코 등 태평양 연안 국가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칠레는 구리 수출로 큰 수익을 내면서도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힘썼다. 멕시코도 ‘중남미의 공장’을 자임하면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다. 알란 가르시아 전 페루 대통령은 최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대서양 연안 국가들을 지칭하며 “중남미 국가 일부는 지나친 보호주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며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가 따를 모델은 브라질이 아니라 칠레”라고 말했다.
태평양파의 경제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풍부한 외환보유액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등 대서양파는 빈약한 정부 재정과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물가가 50%나 올랐다. 작년 중남미 전체에서 가장 취약한 통화로 꼽힌 3개국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였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지난해 달러화 대비 32%나 폭락했다.
중남미 대륙을 나눈 결정적 계기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알래스카에서 칠레까지 포함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출범할 예정이었으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은 당시 멕시코 칠레 페루와 각각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것으로 FTAA를 대신했다.
정치적 노선도 중남미를 둘로 가른 원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대서양파가 미국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동안 태평양파는 워싱턴과의 관계를 더 공고히 해왔다는 것이다. 중남미 젊은 세대들이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을 보며 포퓰리즘이 가져오는 뼈아픈 대가를 학습한 것도 자극이 됐다는 분석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