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대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45.5%(금액 기준)가 지난해 법원에서 삭감됐다고 한다. 공정위의 과징금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심 판결을 받은 대기업 사건은 모두 40건(6038억원)인데 이 중 7개사의 2749억원이 취소된 것이다. 소송 건별로는 5.7개 중 1개꼴로, 금액 기준으로는 약 절반 정도에서 공정위가 완패한 셈이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마구잡이식으로 과징금을 남발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지난해 과징금 취소액이 유독 컸던 것은 정유사들과의 소송에서 패한 탓이 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위 “기름값이 묘하다”라는 발언으로 촉발된 정부와 정유사 간 진실게임은 공정위가 4개 정유사에 4348억원의 담합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심에서 취소된 과징금만 2000억원이 넘는다.

공정위는 그래도 건수 기준으로는 전체 승소율이 80%를 넘는다며 큰 문제는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과징금의 절반가량이 삭감됐다는 것은 그만큼 남발됐다는 방증이다. 돌려준 과징금이 3000억원에 육박한 것도 과거(연간 1000억~2000억원)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최근 과징금 감경 사유는 축소하고 가중 사유는 늘리는 것을 골자로 과징금 고시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사안의 경중과는 상관 없이 여론재판과 유사한 시민심사위원회의 심사까지 거치도록 조치했다. 과징금 남발 가능성만 더욱 높이자는 꼴이다.

물론 불공정거래는 근절돼야 하고 소비자 보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누가 기업을 하고 어느 기업이 공정위 결정을 수긍하겠는가. 비록 소송에서는 이겨도 실추된 기업 이미지는 돈으로 셀 수 없는 피해로 귀결된다. 공정위 주변에 유달리 법조인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도 이처럼 떡고물이 많아서다. 선후를 가리기 어렵겠으나 공정위 출신 전관들의 취직 자리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묘한 생각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