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막장드라마와 시청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실학파의 방법론적 특징 중 하나는 그 시대에 소설도 곧잘 썼다는 점 같다. 특유의 문학적 경지를 이룬 박연암만이 아니다. 대실학자 정다산도 소설을 썼다. 풍자와 골계, 계몽과 교육에 소설만한 방편도 없었다고 여겼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들 실용주의 학자들 간에는 소설 무용론과 유효론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플라톤 때부터 시인추방론이 나왔으니 소설 혹은 문학 무용론은 동서양을 초월했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왜 소설무용론까지 제기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 의문은 TV의 저질막장 드라마들을 보면 풀릴 것 같다. 얽히고설킨 불륜은 기본, 상피(相避)에 엽기적 구성으로 아이들이 볼까 무서워진다. 무슨 사연인지 젊은 여성들이 또래 남성들 뺨도 예사로 갈긴다. 안방극장도, 바보상자도 이미 넘어섰다. 비윤리·폭력센터다. 드라마를 가장한 억지 스토리들이고 건전한 사회인식을 방해할 정도다.
중년 남성쯤 되면 이런 TV공해에서 벗어나기 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휴일엔 가족 눈치 각오하고 야외로 내달린다 치자. 평일저녁엔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게 될 때가 잦다. 채널권은 오래전에 넘어가버렸는데 TV소음에서 벗어날 공간도 없는 게 현대 대중주택이다. 도시의 좁은 아파트는 더하다. 기괴하고 몰상식한 드라마의 볼모가 되는 것이다.
더욱 딱한 것은 이런 윤리 공해물까지 강제로 제작비를 대주어야 한다는 현실이다. TV 수신료다. 언필칭 공영방송이라며 저질화 경쟁에 가세한다. 광고도 상업방송 못지 않다. 매달 무조건 2500원을 전기요금에 얹어 징수해가니 안 낼 재간이 없다. IT강국의 케이블망에서 특정 채널 한두 개 배제 정도는 간단할 텐데 개인은 그럴 권한도 없다. 제도화된 또 하나의 폭력 앞에 채널 선택권 주장은 공허해진다. 드라마가 좀 그렇긴 하지만 다른 프로그램도 있지 않느냐고? 뉴스다 기획이다 하지만 제작자들의 수준과 이념, 방향성에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BBC가 어떠니, NHK가 어떠니 하는 공영 타령도 이젠 지루하다. 그런 방송이 프로그램 관리를 어떻게 하고 정치적 독립을 어떤 식으로 해왔는지는 진정 모르는 것인지…. 그 상투성이 놀랍다. 자기책임 하에 방송하는 미국식 방송시스템은 또 어떨까. KBS는 세금 아닌 이 세금을 월 4000원으로 올리려고 한다. 이 인상안이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잘 보지도 않는 TV를 차라리 어디든 버려버리고 싶은데 방송국으로 가야 하나, 방통위로 가야 하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당대의 지식인들이 왜 소설무용론까지 제기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 의문은 TV의 저질막장 드라마들을 보면 풀릴 것 같다. 얽히고설킨 불륜은 기본, 상피(相避)에 엽기적 구성으로 아이들이 볼까 무서워진다. 무슨 사연인지 젊은 여성들이 또래 남성들 뺨도 예사로 갈긴다. 안방극장도, 바보상자도 이미 넘어섰다. 비윤리·폭력센터다. 드라마를 가장한 억지 스토리들이고 건전한 사회인식을 방해할 정도다.
중년 남성쯤 되면 이런 TV공해에서 벗어나기 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휴일엔 가족 눈치 각오하고 야외로 내달린다 치자. 평일저녁엔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게 될 때가 잦다. 채널권은 오래전에 넘어가버렸는데 TV소음에서 벗어날 공간도 없는 게 현대 대중주택이다. 도시의 좁은 아파트는 더하다. 기괴하고 몰상식한 드라마의 볼모가 되는 것이다.
더욱 딱한 것은 이런 윤리 공해물까지 강제로 제작비를 대주어야 한다는 현실이다. TV 수신료다. 언필칭 공영방송이라며 저질화 경쟁에 가세한다. 광고도 상업방송 못지 않다. 매달 무조건 2500원을 전기요금에 얹어 징수해가니 안 낼 재간이 없다. IT강국의 케이블망에서 특정 채널 한두 개 배제 정도는 간단할 텐데 개인은 그럴 권한도 없다. 제도화된 또 하나의 폭력 앞에 채널 선택권 주장은 공허해진다. 드라마가 좀 그렇긴 하지만 다른 프로그램도 있지 않느냐고? 뉴스다 기획이다 하지만 제작자들의 수준과 이념, 방향성에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BBC가 어떠니, NHK가 어떠니 하는 공영 타령도 이젠 지루하다. 그런 방송이 프로그램 관리를 어떻게 하고 정치적 독립을 어떤 식으로 해왔는지는 진정 모르는 것인지…. 그 상투성이 놀랍다. 자기책임 하에 방송하는 미국식 방송시스템은 또 어떨까. KBS는 세금 아닌 이 세금을 월 4000원으로 올리려고 한다. 이 인상안이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잘 보지도 않는 TV를 차라리 어디든 버려버리고 싶은데 방송국으로 가야 하나, 방통위로 가야 하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