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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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사 반도건설 회장(70) 곁에는 건장한 체격의 외국인이 자주 동행한다. 비서실 소속의 에드워드 리헤이(39)다. 그는 권 회장의 수행원이자 개인 영어교사다. 스포츠 마니아인 권 회장은 스키 스쿠버다이빙 승마 등을 즐기는데 리헤이도 늘 함께한다. 치열한 기업활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면서 영어실력도 쌓기 위해서다.

권 회장은 직원들에게 “국경 없는 무한 경쟁시대에 생존하려면 외국인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70년대 초 부산에서 ‘다가구 하숙집’을 지으며 주택업계에 진출한 업계 원로는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멀티플레이어 ‘권 기사’

골프에서 ‘사이클 버디’는 파3·파4·파5 홀에서 연속으로 버디를 잡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건설은 중견 건설사로는 드물게 지난해 경기 화성동탄2(수도권), 충남 아산(충청), 대구 테크노폴리스(영남) 등 3개 사업장에서 연달아 분양에 성공했다. 주택시장에서 ‘사이클 버디’를 달성한 셈이다. ‘집 장사’ 42년 권 회장의 통찰력과 장인정신을 토대로 찾아낸 수요자 취향과 사업성을 결합한 결과다.

동아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권 회장은 자칭 ‘권 (건축)기사’다. 그는 주택건설업계의 만능 플레이어를 꿈꾼다. 아파트 부지를 고를 때는 실무진과 수차례 방문하고도 보고 또 본다. 새벽 시간이나 늦은 밤에 운전기사만 대동한 채 사업지를 살핀다. 30회 이상 둘러보고 꼼꼼히 살펴본 뒤에야 땅을 산다는 그의 일화는 업계에선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아파트 평면에도 그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 실무진과 둘러앉아 빨간 펜을 들고 꼼꼼하게 설계도면을 검토한다. 하루에 수십장씩 직접 도면을 그릴 때도 있다. 평소 눈여겨본 디자인이나 색상, 불쑥 떠오른 아이디어는 담당자에게 휴대폰으로 전달한다. 아파트 입주 때는 입주 예정자들을 찾아가 불편사항을 경청한다.

권 회장의 처남인 유대식 사장이나 큰 사위인 신동철 전략기획실장, 둘째 딸 권보영 디자인팀장은 물론이고 전 직원이 항시 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 회장은 “표준화된 설계도 없이 목수들이 대충 눈대중으로 집을 짓던 시절에도 ‘권 기사가 만든 집은 안방에서 부엌으로 이동하기에 편리하고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부산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주택사업의 핵심은 모양과 입지가 좋은 땅을 구입해 품질 좋은 집을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것”이라며 “특별한 재주보다는 많이 보고, 열심히 고민하고 분석하는 것이 비법”이라고 소개했다.

“리스크 줄이고 효율성 높여라”

권 회장은 평소 “사업가는 가급적 최소한의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이런 성격은 반도건설의 하도급 계약 관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계약은 건설현장이 아니라 본사에서 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비리와 그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다.(→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권 회장의 리스크 관리)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와 부산에서 성장한 권 회장은 부산에서 주택사업을 하다 외환위기 직후 수도권으로 진출했다. 1999년 경기 의왕시에서 1326가구 대단지를 선보일 땐 대형 건설사들도 규모가 너무 크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철저한 사업성 평가를 해 자신이 있었다. 모 은행이 350억원을 대출해 줄 만큼 금융권과의 신뢰도 두터웠다. 이 단지를 성공시킨 후 반도건설은 용인 죽전, 화성 동탄, 김포 장기, 판교신도시 등에서 잇달아 분양에 성공하며 수도권에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효율을 강조하다 보니 회사 조직은 ‘별동부대’라고 불릴 만큼 가볍고 민첩하다. 반도건설은 지난해 전국 4개 단지에서 3398가구를 공급했다. 올해에도 6개 단지에서 5600여 가구를 내놓을 예정이다. 정식 직원이 채 200명이 되지 않지만 토목·건설공사와 주택사업을 활발히 벌인다. 비법은 모델하우스를 열거나 특정 단지의 입주가 시작되면 해당 부서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가 지원사격에 나서는 것.

집념과 끈기의 전도사

전체 5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주상복합단지사업은 권 회장에겐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국내 사업이 전부였던 반도건설은 2006년 두바이에서 1억달러를 주고 1만9883㎡의 땅을 샀다. 오피스빌딩 아파트 상가로 구성된 57층 규모의 고층 복합건물인 ‘반도 유보라타워’를 짓기로 계획했다.

당시 땅값의 두세 배를 줄 테니 땅을 매각하라는 투자자도 많았다고 한다. 권 회장도 한때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이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대한민국 건설사가 중동에서 추진하는 최초의 부동산개발사업이란 기록과 자부심 때문이었다. 부지 매입부터 자금 조달, 분양에 이르기까지 반도건설이 직접 맡았다. 권 회장도 당시 세계가 주목하던 신흥도시 두바이에서 우리 기술로 당당히 랜드마크급 복합단지를 성공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두바이가 2009년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1t당 40만원하던 철근값이 150만원으로 뛰는 등 자재값이 급등했다. 빈 건물이 속출하자 시공을 맡았던 인도의 대형 건설사도 급기야 공사를 포기했다. 반도건설은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에 몰렸다.

권 회장은 “짓다 만 건물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역경을 극복하고 건물을 완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갖은 시련 끝에 권 회장은 2011년 ‘반도 유보라타워’를 완성했다. 절반 이상 쌓여 있던 미분양 아파트와 상가도 작년부터 속속 팔려 나가고 있다. 작년 매출만 800억원대에 달해 이젠 ‘효자 사업지’가 됐다. 권 회장은 “사업은 항상 위기를 안고 있다”며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생명과 맞바꾸더라도 꼭 이루겠다는 자신감과 긍정적 정신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