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오는 2020년까지 추진할 중·장기 과제를 ‘선진화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어제 발표했다. 거래시간 연장, 호가단위 인하 및 단주거래 허용, 시간외시장의 가격제한폭 확대, 파생상품 위탁 증거금률 인하, 상장요건 다양화 등이 골자다. 선진화 전략을 내놓은 것은 침체에서 못 벗어나는 시장에 어떻게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실 최근 시장 상황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일평균 거래대금이 2011년 대비 36%나 줄어든 지난해였다. 코스피200옵션 거래는 40% 감소다. 증권사들의 순이익은 지난해 무려 85.8%나 격감했고 거래소 영업이익도 52% 줄었다.

하지만 거래소가 제시한 방법으로 시장이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최근 증시 침체는 일시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다. 주식투자 인구가 7년 만에 감소로 돌아선 데서 알 수 있듯이 개인투자자의 상당수는 아예 시장을 떠나버렸다. 자칫 쪽박 차기 십상이다. 외환위기 후 각종 제도와 상품이 상장기업을 옥죄고 투기를 조장하는 식으로 바뀌면서 시장은 이제 외국인이 좌우하는 투기판처럼 돼버렸다. 급등락장에서 개인은 돈을 벌기는커녕 빈털터리가 됐다. 외국인들조차 장기투자보다는 치고빠지기식 단기투자에 몰두한다.

상황이 이런 터에 거래시간이나 호가, 가격제한폭과 같은 지엽적인 제도를 고친다고 시장이 달라질 리 만무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벌 규제나 투명성 보강, 대주주 횡포금지 등을 명분으로 온갖 규제가 늘면서 증시의 자금조달 기능이 거의 마비됐다는 점이다. 2010년 96건 10조원에 달하던 기업공개 규모가 지난해 40건 1조3000억원으로 쪼그라든 것이 잘 말해준다. 우량주식 공급도, 이를 찾는 수요도 없으니 시장 침체는 당연하다.

물론 이런 문제의 책임이 모두 거래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시장침체의 원인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문제다. 방만 경영, 고임금, 철밥통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한국거래소다. 시장활성화를 위한 보다 책임 있는 역할이 요구된다.